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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시인들은 망했다 - 김유석

김유석(시인)

주일에 한 번쯤 책상을 정리하다가 종종 머츰해질 때가 있다. 접혀진 채 쌓여있는 신문더미, 뜯지 않은 몇 권의 책 그리고,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읽혀진 듯한 우편물들을 치우는 가슴에 묻어나는 먼지를 훔칠 때마다 절로 낯설어지는 나를 보게 된다. 행여 그것들 틈에 낀 채 지나쳐버린 약속이라도 눈에 띌라치면 난감하기가 이만저만 아닌데, ‘바삐 산다’는 시쳇말보다 이미 익숙해진 습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일부러 핑계를 대자면 숫제 인터넷 탓이다. 어젯밤도 줄창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지 않았던가. 웬만한 소식이나 정보쯤은 마우스 하나로 간단히 검색해버리므로 신문을 펼치는 경우라곤 화장실 갈 때가 고작일 정도로 하루 분의 짬에서 소외되어 가는 판이다. 책에 대한 예우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책이라야 겨우 구독하는 문예지 두서너 권과 애써 보내온 지인들의 시집 낱권뿐인데도 한참을 그냥 쌓아두었다가 따로 시간을 빌어 허겁지겁 넘기는 예가 늘고 있으니 정독은커녕 모름지기 허물까지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이 인터넷은 이미 생활의 일부로써 다양한 정보와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전문지식에서부터 뉴스, 스포츠, 오락에 이르기까지 클릭만 하면 그 즉시 원하는 것들을 창에 끌어다주므로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대한민국에 안되는 게 어디 있니?’라는 우스개 말을 떠올릴 만하다. 날밤을 새워가며 게임삼매경에 빠지는 아이들이나 고스톱을 즐기는 아줌마들, 틈만 나면 카페에 들러 잡담을 주고받는 사람들 모두가 마니아인 우리나라는 가히 인터넷 공화국인 셈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밤이면 밤마다 컴퓨터를 켜고 새로운 호기심을 찾는다. 뿐만 아니라 따로 즐겨찾기에 올려둔 몇 개의 사이트를 들락거리느라 밤잠을 설치는 날도 많다. 나름의 취향이니 만큼 음악과 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물 없이 기웃거리며 마음의 닮은꼴을 찾는 것이다. 그쯤 익숙해지던 어떤 방에서 즐겨 듣던 몇 곡의 노래가 슬그머니 지워진 그 어느 날 이후 일말의 아쉬움과 회의가 드나는 곳마다 조금씩 묻어나기 시작했다.

 

노래가 지워진 까닭은 필경 저작권 시비였다. 모든 노래가 한꺼번에 삭제되지 않은 영문이야 잘 모르겠지만 공짜였던 유명 음악사이트들이 유료화 되어 이제부턴 한 곡 한 곡을 내려받을 때마다 그 대가를 치러야 하게 됐다. 노래 한 곡을 지어 대중의 희로애락을 어우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생각하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어 기꺼이 따르다가도 불현듯 울화가 치밀 때가 있다.

 

한창 잘 나가는 가수들의 노래가 걸맞은(?) 예우를 받는데 반해 시인들은 여전히 인터넷을 방황하고 있잖은가. 지명도에 상관없이 대다수 시인들의 글이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으니 말이다. 시의 대중화를 역설한다든지 여전히 생계를 도외시한 채 고리타분하게 정신적인 측면만을 운운한다면 좀 무안한 자기변명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편의 시도 한 곡조 노래 이상의 산고를 겪으며 태어나는 것이다.

 

시집이 이따금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기억하기론 작년에 가장 많이 팔린 시집이 얼추 5000~6000권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시를 더 많이 읽는다는 통설이 맞다면 한 편의 시가 밥 한 그릇이 되지 못하는 요즘은 살만한 세상인가? 아니면. 그래도 새로운 문예지를 만들고 원고료도 없는 한 두 편의 글을 발표하기 위해 한해에도 수없이 탄생하는 이 땅의 오프라인 마니아들을 보자니 은근히 힘(?)이 난다.

 

/김유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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