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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포-사람과 풍경] 어버이날 대통령 표창 정읍 태인 김경순씨

자식된 도리 했을 뿐인데...23년간 거동불편한 시부모 병수발...

김경순씨가 하반신 마비로 거동을 할 수 없는 시어머니를 주물러주고 있다. ([email protected])

"당연히 자식된 도리를 했을 뿐인데 너무 큰 상을 주어 과분합니다"

 

오는 8일 제 34회 어버이날을 맞아 효행자부문 대통령표창을 받는 정읍 태인면 거산리 동구네마을 김경순씨(45). 마을 들녘에서 벼 못자리를 하다 수상소식을 접한 김씨에게 소감을 묻자 "큰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주위에서 부모님을 잘 모시는 사람들도 많은데..."라며 자신을 낮췄다.

 

신문나는 것이 부끄럽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는 김씨를 설득해 지난 23년여 동안 거동이 불편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 온 얘기를 들었다.

 

대전 유성에서 성장한 김씨는 중학교를 마치고 70년대 중반 경기도 부천에 있는 피혁가공공장에 취직했다. 당시 같은 회사에 다니던 직장 선배이자 현 남편인 김치호씨(49)와 서로 눈(?)이 맞아 82년 결혼식을 올리고 1년 남짓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을 무렵이었다. 고향 집에 있던 동생들이 모두 성장, 출타하게 돼 부모를 부양할 사람이 없게 되자 2남3녀중 장남인 치호씨가 부모를 모셔야 할 처지였다는 것.

 

"농촌에서 생활한 적이 없어 정말 쌀 나무에서 쌀이 나는 줄 알았어요. 당시 나이도 어리고 농촌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리에 남편보다 제가 먼저 농촌으로 내려가자고 했죠"

 

하지만 경순씨의 귀농 길에 걸림돌은 친정 어머니였다. '왜 힘든 농촌으로 내려가 고생을 사서 하려느냐'며 강력 반대했었다는 것.

 

친정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83년부터 시골 시댁살이에 나선 경순씨는 그러나 당장 현실로 다가 온 농촌생활을 감당하기엔 22살난 어린 새댁으로선 너무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젊은 시절 척추와 하반신마비로 거동을 할 수 없는 시어머니 고순례씨(74)와 역시 젊을 때 한쪽 다리를 잃어 중중 장애를 가진 시아버지 김동기씨(79)의 수발과 간호는 경순씨가 도맡아야 했다.

 

특히 시어머니는 혼자서는 식사는 물론 대·소변을 해결할 수 없는 와병상태이어서 경순씨가 손과 발이 되어야만 했다.

 

하루 몇 차례씩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것은 물론 항상 누워 생활하기 때문에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자주 목욕을 시켜드리고 마사지도 해줘야 했다.

 

때문에 경순씨는 아직껏 멀리 출타해 본적이 없다. 농한기 때는 동네주민들의 경우 일감을 찾아 이웃마을 등지로 품을 팔러 나가지만 경순씨는 시어머니 수발을 위해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것.

 

이 같은 경순씨의 효성 때문인지 일흔을 훌쩍 넘긴 시어머니 고씨는 여전히 얼굴 혈색이 좋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시어머니 고순례씨는 “친 딸도 하기 어려운데 며느리가 정말 고맙고 이쁘다”며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온 것도 모두 며느리 덕분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힘든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저를 더 챙겨주고 배려해주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고마웠습니다”

 

바쁜 농촌 일 때문에 간혹 자신의 생일을 잊을 때도 있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꼭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고 빨래하기 힘들다고 제일 먼저 세탁기도 사줬다며 시부모에 대한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제가 한 일보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제게 베푼 배려를 생각하면 십분의 일도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경순씨에게 가장 힘 든 것은 고단한 농촌 생활이었다.

 

뙤약볕에 나가 하루 종일 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집안 살림을 챙겨야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농촌 일이 적응이 안돼 눈물로 지샌 적도 많았다고 전했다.

 

“때로는 남편에게 투정도 부리고 화도 냈지만 그 때마다 이해하고 잘 받아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견뎌 온 것 같습니다”

 

논 한 필지와 느타리 버섯재배로 생계를 꾸려 온 경순씨네는 최근 쌀값과 버섯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어 얼마 전부터 남편이 공사장 일을 나가고 있다.

 

“농촌의 삶이 부유하고 여유 있지는 않지만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가족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게 행복한 것 아니냐”며 농군의 아내로서 체득한 안분지족을 피력했다.

 

연배에 비해 일찍 결혼한 경순씨는 둘째 딸이 지난해 결혼해 외손녀(6개월)를 보았고 큰 딸과 아들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동구네마을 이장 박중래씨(63)는 “요즘 세대에 고부간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심각한데 경순씨처럼 시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평소에도 동네에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밑반찬을 챙겨주는 등 이웃에 대한 봉사활동에도 앞장서 와 효행자로 정부에 적극 추천했다”고 밝혔다.

 

3년 전부터 태인면 소재지에 있는 제일교회에 출석한 경순씨는 요즘 구역권찰 직분을 맡아 신앙생활도 적극적이다.

 

“불교를 믿던 시부모 때문에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동안 교회를 못 나갔지만 이젠 가정도 안정되어서 어릴적부터 다니던 교회를 다시 나가게 됐다”며 “십계명 가운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인간에 대한 첫 계명을 항상 되새기고 있다”고 밝혔다.

 

경순씨에게 희망사항을 묻자 “그동안 시부모의 거동이 불편해 함께 외출한번 못했는데 건강이 허락하면 부모님과 같이 여행 한번해 보는 것”이라며 소박한 속내를 드러냈다.

 

권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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