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번뇌」(百八煩惱, 동광사, 1926)는 육당 최남선(1890∼1957)의 시조집이다. 20세기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시조집으로 반국판 128면이다. 아금박스럽게 장정된 시집이다.
내가 이 책을 입수한 것은 1958년 6월 24일 전주의 고서점에서였다. 앞표지 뒤에 기입되어 있다. 저때 무척 기뻤던 기억도 새롭다.
시집은 3부 구성이다. 제1부 ‘동청나무 그늘’(님 때문에 끊긴 애를 읊은) 36수, 제2부 ‘구름 지난 자리’(조선 국토순례의 축문으로 쓴) 36수, 제3부 ‘날아드는 잘새’(案頭三尺에 제 자리를 잊어버리든) 36수로 되어있다. 그러나 제2부에 수록된 작품수는 39수로, 실제작품은 108수 아닌 111수다.
제1부 작품엔 ‘님’이 자주 등장한다. 부제에서도 ‘님 때문에 끊긴 애’를 읊는다고 했다. 벽초 홍명희(洪命熹)는 제어(題語)에서 ‘육당의 님은 구경 누구인가/그 님의 이름은 ‘조선’인가 한다’고 했다. 이때 육당은 ‘한샘’이란 호도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백팔번뇌」는 백팔염주(百八念珠)·백팔종(百八鍾)과 같이 불교용어이기도 하다. 사람이 지닌 번뇌 수를 108로 세고 있다. 육당이 「백팔번뇌」의 서문을 쓴 날짜도 ‘최초의 시조로 활자에 신세진지 23년 되는 병인(丙寅)해 불탄일(佛誕日)’이라 했다.
두 수 작품을 다시 읊어본다.
⑴‘봄이 또 왔다 한다/오시기는 온 양 하나/동산에 퓌인 꽃이/언가슴을 못 푸나니/님 떠나 외론 적이면/겨울인가 하노라.’ ⑵‘밤중이 고요커늘/조희를 또 펴노매라/날마다 못 그린 뜻/오늘이나 하얏더니/붓방아 예런 듯하고/닭이 벌서 울어라.’
잠시 저때 육당의 번뇌도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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