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석(시인)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다. ‘언어 동작이 느리고 정신 작용이 완전하지 못함’이라는 ‘치매’의 사전적 의미에 시대의 화두인 ‘디지털’이 합성된 신조어쯤으로, 컴퓨터나 핸드폰 등의 기기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세태를 꼬집을 때 쓰이는 예를 몇 번 들어본 것 같다. 치매가 보통 노인성 뇌질환을 일컫는데 비하여 디지털치매는 디지털문화에 민감하게 노출된 보다 젊은 세대들의 정서질환을 겨냥한 ‘증후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듯싶다.
기기 가운데서도 가장 빠르고 다양한 용도로 생활화된 컴퓨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정도로 무소불위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반면 감당해야 할 병폐 또한 만만치 않게 드러내고 있다. 사소한 부주의나 개인적인 책임일 뿐으로 공공연히 묵인해 가고 있는 그런 사건사고를 일컬음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증상도 없는 인터넷의 그늘, 홀릭이 아닌 사람일지라도 모름지기 노출되어 있다 할 수 밖에 없는 인터넷의 함정을 말함이다.
여전히 컴맹에 가깝지만 컴퓨터를 켜는 일이 점점 늘어 간다. 그 대부분이 인터넷임은 두말 할 나위 없다. 대문 앞 우편함을 흘긋거리는 대신 틈틈이 이메일을 들여다본다. 그전 같으면 수첩이나 주소록 같은 데에 꼼꼼히 적던 중요한 일들을 그 안에 저장해 두고 혹 날아갈까 봐 기우에 시달리기도 한다. 만년필이 아닌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기도 하고 부질없이 이곳저곳 사이트를 들락거리다가 우연히 유익한 정보를 얻을 때도 적잖다. 보고 싶은 영화나 노래를 내려 받을 줄 안 뒤로 영화관에 가고 디스크를 사 본 기억이 까마득하고, 게임은 할 줄 모르지만 솔직히 야동을 몇 번 즐긴 적도 있다.
그 정도야 기본 아니겠는가, 적어도 폐인은 아니니까.
그러다보면 저도 모르게 멀어지는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책읽기가 그렇다. 클릭 몇 번이면 ‘폭풍의 언덕’을 읽지 않고서도 등장인물은 물론 줄거리를 훤히 꿸 수 있으므로 굳이 먹고사는 일이 아닌 것들에 긴 시간을 할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책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인물들의 감정과 복선 등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 그만이다. 어디 책뿐이겠는가. 만물상처럼 없는 게 없고 백과사전 못지않게 브리핑되어 나오는 지식들, 흘려들은 얘기로는 컴퓨터 하나로 논문을 쓴 작자들도 있다나? 필요한 것들은 머리와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기 속에 다 들어있으므로 자판기의 커피를 뽑듯 꺼내 쓰면 된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편리함을 들먹거리기 전에 홀려간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싶다. 신발이든 옷가지를 사든 꼭 쇼핑몰에서 택배로 구입하는 아이에게 물었더니 유행이라고 그런다. 유행이란 말을 문화로 바꿔 들으며 어릴 적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읍내 장날을 떠올려봤다. 시간도 아끼고 값도 발품을 파는 것보다 저렴하다하니 일거양득인 것만은 분명하다 싶은데 뒷맛이 여간 씁쓸하지 않은 까닭은 ‘디지털치매’가 역설적으로 디지털문화를 낯설어 하는 쉰(?)세대를 호칭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컴퓨터가 켜진 밤이다. 마땅히 사용해야할 일이 없어도 우선 컴퓨터부터 켜놓고 책상을 닦거나 하루의 생각을 정리한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하고도 무서운 질환이다. 클릭, 클릭, 또 클릭.
/김유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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