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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천재는 시대를 뛰어넘은 사람"

독립사학자 김병기·신정일·이덕일씨 '한국사의 천재들' 펴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천재 실학자 정약용이 ‘귀신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는 천재 이가환. “뱃속에 저장된 것이 땅과 바다의 포용함과 같다”고 할 정도로 박학했지만, 노론은 이가환이 천주학에 빠져있다는 것을 빌미로 탄핵을 시도했다.

 

나라가 망했을 때 적지않은 지식인들은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가담하거나 속으로만 분노하는 세월을 보내다 속민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초야에 묻혀 독서와 저술에 힘쓰던 황현은 “내가 꼭 죽어야할 의리는 없지만 국가가 선비를 기른 지 500년에 나라가 망하는 날을 당하여 한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라며, 아편덩어리를 삼키고 조선조 마지막 선비로 남았다.

 

박제가 된 천재는 천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의 진정한 천재는 누구인가.

 

「한국사의 천재들」(생각의나무)을 펴낸 독립사학자 신정일 이덕일 김병기씨는 “대부분의 천재들은 그저 좋은 머리로 자신이나 가족의 영달을 도모할 뿐이지만 시대의 천재, 곧 역사의 천재는 시대와의 불화를 감수하고서라도 시대를 뛰어넘은 사람들을 뜻한다”고 말했다.

 

철벽같이 단단한 신분제 사회에서 과학기술능력 하나로 신분을 뛰어넘은 관노 출신 장영실과 신라만을 우리 민족의 정통이라 생각하던 시절, 발해를 우리 역사로 인식한 유득공, 교종이 불교의 주류이던 때 선종으로 교종을 통합했던 지눌 역시 그런 의미에서 천재다. 싸우지 않고 이긴 역대 최고의 외교가 서희, 골품제의 덫에 걸린 당대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 한국사 최초의 그리스도교인 이벽, 어긋난 세상의 번민을 노래한 비운의 아웃사이더 김시습도 마찬가지다. 13명의 ‘천재’가 이 책에서 되살아났다.

 

한국사를 관통하는 인물을 다룬 수많은 책 중에서도 이 책이 주목받는 것은 단순나열식의 위인전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 천재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며 진정한 천재를 발굴하고 조명한 ‘천재 열전’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의 영역을 축소시킨 기존의 주류 실증주의 사관을 극복하는 일에 뜻을 같이한 세 명의 ‘독립’사학자들의 공동작업인 점도 의미있다. 신씨는 지난 20여년 간 전국을 발로 걸어 답사한 향토사학자로 유명하며, 김씨는 우리 역사에 덧씌워진 중화사관과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를 벗겨내는 일에 매달려 왔다. 이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생존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들을 복원하는 작업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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