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병석 누워서도 허공향해 붓질 하시던...
다섯번째 창작집을 내겠다고 써낸 단편들을 손질하던 참에, “이건 너무 습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산문을 떠올렸다”는 송하춘 고려대 교수(62).
김제에서 나고 자라 197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한번 그렇게 보낸 가을’이 당선된 이후 같은 이름의 창작집과 「은장도와 트럼펫」 「하백의 딸들」 「공룡의 꿈」을 잇달아 펴내며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소중히 여겨온 그였다. 송교수가 첫 산문집 「판전의 글씨」(작가)를 펴냈다.
“들깨 꽃만 피우던 자리에 한번쯤 참깨 모종을 내보는 것도 딴은 농사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싶다”는 그는 “픽션이 아닌 글로 처음 독자들 앞에 서는 마음이 흡사 무반주로 솔로를 부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담백하고 조촐한 것들로만 모은 산문집은 ‘세상은 일곱 살짜리가 일흔 살 노인처럼 사는 게 아니라, 일흔 살 노인이 일곱 살 어린애처럼 사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는 ‘졸렬한 판전’(板殿)과도 같다. 문인으로 30여년 세월 속에서 느낀 따뜻한 서정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고향의 독자들에게 이번 수필집이 더 반가운 것은 한국 서예의 대가 강암 송성용 선생이 그의 아버지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학교 갔다 오면 어머니는 밭으로 일하러 나가시고, 아버지는 홀로 텅 빈 집안에 남아 방문을 열어 잦힌 채 붓글씨는 쓰고 계셨다’는 그의 회상이 한 줄 한 줄 애잔하게 녹아있다. 마지막 병석에 누워서도 허공을 향해 붓질을 하시던 아버지와 살아계셨을 적 치매로 고생하신 어머니…. “육성으로 지르는 소리지만 내 목소리를 내 귀로 들을 수 있어 기분 좋다”는 그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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