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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유년 - 황영순

꿈속의 이야기 머리 가득

 

가슴 속 양식인 양 저장해 두고

 

산천을 돌아나와 먼 날을 굽어본다

 

살아왔던 유년이 곰실곰실 햇살로

 

물그림자 흔들린다. 무지개 다리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보 남 파 초 노 주 빨

 

씨 뿌리지 않고도 솟아오른 제비꽃마냥

 

히히닥 거리는 어여쁨이다

 

봉긋봉긋 솟아오름이다.

 

잎들이 제 마음대로 나부끼는

 

오래되어 어렴풋한 보고싶은 얼굴들

 

한 번 쯤 긴 잠을 깨우고 싶다.

 

그대들을 불러오고 싶다.

 

- 여류문학회지 <결> (1999)에서

 

 

유년에의 이미지, 가즈런한 추억과는 달라

 

누구에게나 유년에의 회억은 현실의 호오(好惡)와 관계없이 ‘씨뿌리지 않고도 솟아 오른 제비꽃’ 같은 어여쁨이요, 비 온 뒤 떠오른 무지개빛이다. 설혹 인간이 현실의 완강한 상황 앞에 제압된다 할지라도 이 유년의 무지개만은 결단코 침탈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년시절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른 여러 시적 이미지들은 기실 일기장에 적어놓은 가즈런한 추억들과는 다르다. 황 시인이 이 작품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유년에의 추억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는 유년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넋의 혁명에 의해 시작된다’라는 G.바슐라르의 말처럼, 각박한 이 현실 속에서 그대들의 ‘긴 잠을 깨우고’ 또 이곳으로 ‘불러오고 싶다’고 한 그 현장감과의 제휴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허소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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