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 무더운 한나절
소나기 한들금 시원스레 스친 뒤
나풀거리며 춤 추는
미루나무 이파리.
나무 잎새들은 잎새끼리
꽃봉오리들은 봉오리끼리
손짓하며 새처럼 조잘거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촉촉히 싱그러운
사랑하는 이 있었으면……,
조마대는 내 맘처럼
도란도란 저희끼리 소곤거린다.
- 시집 <회색 우상> 에서 회색>
자연과의 합일된 사랑이야말로……
시인들이 왕왕 자연을 소재로 시를 쓰게 되는데 물론 그때마다 자연에 대한 해석은 시인의 재량에 속한다. 그럼에도 인류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우연히 경험의 공통점을 발견케 되는 바 이가 곧 원형상징이다.
이 시의 배경이 되는 여름과 그에 따라 소나기 온 뒤 춤을 추고 있는 미루나무 잎새와, 서로 손짓하며 새처럼 조잘대는 꽃봉오리, 이 모두가 삼손의 계절에 걸찾게 안배되어 있다. 그러나 이 안배는 무엇인가 일을 꾸며야 한다. 이가 곧 3연에서의 ‘사랑하는 이가 있었으면……’ 이다. 이 사랑은 화자 개인의 염원이면서 ‘조마대는 내 맘처럼’, 소곤거리는 나뭇잎새와 꽃봉오리들과의 합일을 통해 더 없이 승화 된다. 시인은 이 합일된 사랑이야 말로 메마른 이 세상을 구원하는 최상의 공간으로 확신하며, 독자가 이 공간에 쓰러질 때 비로소 이 시는 완결을 고한다.
/ 허소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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