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제자들이 준비해 온 추모 행사가 이제는 제법 스승이 바라던 걸진 굿판으로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일처럼 여기고 함께 해 준 이들이 없었다면 혼자서는 절대 시작도 못 했을 일이죠.”
넉넉한 필봉산 산그늘에 안긴 ‘필봉풍물굿 축제’. 그 안에서는 모두가 다 똑같다.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시작된 추모제가 축제로 커져서 좋겠다”는 질문에 故 양순용 선생 아들이기도 한 양진성 임실필봉농악보존회장은 “필봉농악에서 아버지를 뺄 수는 없겠지만 또 아버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며 “축제는 필봉농악을 이어오는 데 자리를 지켜준 모든 명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무형문화재들의 공연인 ‘강산의 신명이 한자리에’도 마찬가지다. 양회장은 “자칫 자기네 풍물이 최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곳에 모인 농악단들은 지역성 없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좋다”고 덧붙였다.
26일 임실군 강진면 임실필봉농악전수관에서 열린 ‘제11회 필봉풍물굿 축제’. ‘天·地·人 하나되는 신명의 소리’를 주제로 한 올해 축제에는 진주삼천포농악보존회, 평택농악보존회, 강릉농악보존회, 고성오광대가 한 데 어우러져 모래판에 꽃을 피워냈다. 고성오광대는 초대된 문화재들 중 유일한 탈춤. 구경꾼들의 신명을 돋우고 풍물패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올해부터는 탈춤을 빠뜨리지 않도록 했다.
‘필봉굿의 명인들 추모제’에는 올해 이름이 하나 더 올랐다. “힘이 부쳐 지치다가도 흥이 나면 신들린 사람 마냥 힘든지 모르겠다”며 “풍물이 마술같다”던 소고잽이 채규병 할아버지. 필봉농악판의 최고령이었던 그가 올 초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단원들은 “옛날에는 풍물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죽고나면 악기도 버려지곤 했다”며 “풍물도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종일 계속된 축제는 허허로운 뱃 속을 덥히고 굿가락과 춤과 익살과 재담으로 사람의 인연을 튼튼하게 동여맨 자리였다. 사람을 살찌우는 굿판이 바로 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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