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걸령 허리 잡고
목매 누운 피아골
가슴 열고 내려가면 살 발린 갈비뼈 사이
머리는 머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버거운 몸뚱이 여기저기 잘라 던지며
서럽게 나뒹구는 돌덩어리들
죽은 듯 엎드려
주둥아리 문질러 버린 벙어리들이
그래도 할 말은 있는지
앙가슴 훑고 훑어 꽃을 피운다
살아서 말 못한 말도
모두 뱉아 버리듯
선홍의 핏빛으로 진달래 피운다
- 시집 <智異山에 무릎꿇고 머리 수그리고> 에서 智異山에>
역사의 증언자로서의 ‘산’
이른바 민족의 영산이라고 하는 지리산은 단순히 추억이 깃든 공간이 아닌, 여 ? 순 사건을 위시하여 저 피비린내 나는 6.25의 상흔을 고스란히 보듬고 있는 역사의 증언자로서의 산이 된 것이다. 시인은 5년여 동안이나 이곳에 머물면서 누구보다 생생히 지리산의 애환을 가슴에 담을 수가 있었다. 특히 피아를 떠나 인간 생명의 존엄이 이데올로기보다 상위개념이라는 신념속에, 높낮이 없는 민족 화해까지를 염원한 시집 『지리산-』은 동일소재의 여타의 작품집 중 단연 압권이 아닌가 싶다.
본 작품의 첫 시작 ‘임걸령 허리잡고 / 목매 누운 피아골’, 단 2행만 가지고도 ‘피아골’의 지리적 공간과 당시의 참상이 당장 손에 잡힐 듯하다. 이어 머리와 몸통이 잘라져 나뒹구는 돌덩이들과 주둥아리 문질러진 벙어리들이, 살아 못한 말을 ‘핏빛 진달래’로 피운다는 마무리에 이르러선 독자로 하여금 새삼 옷깃을 여미게 한다.
/ 허소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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