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蔡萬植, 1902∼1950, 호 白菱, 采翁)의 고향이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인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리시 갈산동에서 작고한 후의 일이다. 작가의 생몰을 알기에 앞서 나는 「채만식단편집」(학예사, 1939)을 읽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입수한 것은 ‘6.25’전 남원이나 전주의 어느 고서점에서가 아니었던가 싶다.
이 책은 문고본 252면으로 지금 들추어 보아도 야물딱스러운 제본이다. 제본은 우일사(宇一社)로 밝혀져 있다. 값은 50전(錢). 서문·발문이나 작가 소개도 따로 없고, 목차에 이어 바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작품은 ‘생명’, ‘빈(貧)·제1장 제2조’, ‘동화’, ‘이런 처지’, ‘소망(少妄)’, ‘쑥꾹새’, ‘용동댁(龍洞宅)’, ‘정자나무 있는 풍경’ 등 여덟 편이다. 읽기에 생소한 낱말들, 지문(地文)의 지루한 묘사·설명이 맞갖잖은 바 없지 않았으나, 이야기의 전개가 재미있었다. ‘왜목불알’(애기의 불알), ‘희광이’(죄인의 목을 자르던 사람), ‘지킴’(수호신), ‘왜장녀’(왜장을 잘 치는 여자), ‘품개질’(삯일) 등 낱말의 뜻을 챙겨본 것도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였다.
‘생명’에서 오월이가 본처 아씨로부터 혹독한 매를 맞는 광경은 지금도 몸서리가 처진다. 저 무서운 매를 맞으면서도 오월이는 ‘뱃속의 생명’에 대한 애착으로 ‘배 만을 두 팔로 안고 돌면서’ 애를 쓴다. 끝내는 ‘게버큼’을 내면서 기절한다. 기절한 몸인데도 뱃속의 새 생명은 ‘부둥부둥 머리를 들어밀고 나오기 시작한다’의 묘사에는 내 숨도 멈추는 느낌이었다.
뒷날 ‘탁류’와 ‘천하태평’등 장편소설을 찾아 애독하게 된 것은 이 단편집의 인연으로 하여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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