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문학적 업적 재조명...항일-친일-순수의 딜레마...소설 '여인전기' 놓고 토론
채만식(1902∼1950).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등을 아울러 200여편의 작품을 남긴 그는 빼어난 풍자적 비판의식으로 현대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태평천하」「레디메이드 인생」「소망(小妄)」「치숙(癡叔)」「금(金)의 정열(情熱)」등은 사회체제에 대한 풍자가 예리하게 돋보이는 작품으로,「탁류」는 사실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인 리얼리즘 소설의 수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작가 채만식과 그의 문학적 업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그를 친일작가로 규정한 반면 최근에는 그의 작품이 항일문학의 본령이라고 주장되기도 한다.
군산문화원(원장 이복웅)이 지난 22일 군산리츠프라자호텔에서 채만식 문학에 대한 재평가의 자리를 마련했다. ‘작가 채만식에 대한 저항, 순수, 친일의 딜레마’를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친일과 항일·순수예술성을 집중 조명하며, 친일논란으로 그의 문학성이 폄훼돼서는 안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날 논란의 중심이 된 작품은 소설「여인전기」. 최유찬 연세대국문과교수는 소설속 ‘어머니의 눈물’이 항일적인 눈물이었다고 주장한 반면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친일적인 눈물’로 해석했다. 송하춘 고려대 국문과교수는 채만식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순수문학이었다고 주장했다.
최유찬교수는 “채만식은 풍자만이 아니라 알레고리 자전적 기법 등의 여러 문학적방법을 구사한 전천후 작가이며, 알레고리 기법을 통해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제의 조선문학에 대한 검열과 단속이 강화된 이후 일제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알레고리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소복 입은 영혼」「얼어죽은 모나리자」「생명」「두 순정」등 여러 단편과 「심봉사」「제향날」등 희곡, 「탁류」「태평천하」「어머니」「여인전기」같은 장편도 알레고리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최교수는 특히 「탁류」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수탈당하는 조선의 현실을 형상화한 것으로 조선민족이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제를 타도하는 내용이라고 들었다. 또 「여인전기」를 항일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꼽았다. 이 소설은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인 시어머니의 핍박에서 비롯된 것으로, 며느리의 고난이 곧 조선민족의 싸움이었음을 말해주며,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조선민족의 승리를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임헌영소장은 “「여인전기」가 내선일체론, 총후봉공론, 대동아공영론 등의 일제 시책에 입각해서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로전쟁’때 일군의 승전기와 일본인 이복형제의 상봉에 나타난 친일사상내용이 있는데, 특히 주인공과 아버지가 같은 일본인 혼혈의 배다른 동생이 만나 서로 핏줄의 인연을 확인하는 마지막대목이 일제 시책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임소장은 또 이 작품이 1945년을 현 시점으로 1915년을 일차 회상시점으로, 또 1905년을 겹회상하는 형식인데 이 시기에 일어난 3.1운동과 카프를 중심으로 했던 민족해방운동, 식민지수탈과 황민화정책 등 정치적으로 주요한 민족적 사건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소설속에서 그리고 있는 구식어머니와 신식어머니의 성패의 대비도 조선은 열등하고 일본을 모방해야 할 대상으로 그리고 있다고 했다. 임소장은 채만식의 문학적 업적과 성과는 인정하지만 그가 친일을 한 것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송하춘교수는 “채만식은 카프문학의 인간성을 무시한 이데올로기의 강제주입과 민족문학 작가들의 이상주의와, 신심리주의자들의 심리관찰 문학이 교묘하게 얽혀있는 당시 문단상황에서 그 어느쪽도 인정하지 못하는 자기만의 독특한 이데올로기와 그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에 차 있었다”며 “그것이 채만식문학의 독특한 입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송교수는 “채만식의 역설의 발견, 재발견이 카프 목적문학과 대비돼 이념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순수한 열정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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