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섭(교육인적자원부 감사관)
#평생에 단 한번 하루 양반이 되는 날, 삼돌이는 사모관대에 의젓한 양반댁 자제가 되고, 삼순이는 원삼족두리에 양가댁 규수 되어 시집장가 가던 날, 내 동네 네 동네 너나없이 모두 나와 울타리 무너지도록 흥겨웁게 함께 즐기던 날.
#암탉 한 마리 머리에 이고 가는 장날, 무풍장, 순창장, 운봉장... 이웃마을 먹쇠아비 만나 시집보낸 딸 소식 듣고, 장터국밥 한 그릇에 허기를 때우며, 떡장수, 엿장수, 장돌뱅이, 봇짐장수, 등짐장수, 온 동네 사람들과 시끌벅적 떠들고, 남사당패 굿거리에 하루해가 다가는 줄 모르고 함께하던 시절.
지금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모두 함께 떠들고 즐기던 내고향 사람들의 정겹고 아름다운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들....
이러한 삶들 속에서 내고향 사람들은 신분체계와 직업체계가 동일시 된 길고 긴 세월에도, 오직 직업을 하늘이 내린 천직으로 알고 이를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으로 삼았다. 신분의 높고 낮음과 부함과 빈함이 직업의 귀천에 있었건만, 소박하고 조그마한 행복을 소중이 여겨, 농부는 천리(天理)에 순응하며 이웃과 품앗이로 풍년을 맞고, 공인은 도(道)를 닦는 정성으로 옹기를 굽고, 상인은 속이지 않음을 천도(天道)로 삼아 손님을 섬겼으며, 공동체간의 신뢰와 신용을 근본으로 사회규범과 직업윤리를 세웠다. 이렇게 내 고향 사람들은 하늘과의 약속,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믿음으로 호박넝쿨처럼 엉키고 설키면서 서로를 의지하고 도와주며 오순도순 살아왔다.
이제 드디어, 이 같은 내고향의 전통적 가치가 빛을 발할 때가 도래했다. 인류공동체들이 각자의 번영만을 추구하여 경쟁과 대결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던 20세기를 지나, 21세기는 “인류의 번영과 평화, 공존”을 추구하고 있다. 생존과 공존을 연결하는 고리는 “공동체 속에서의 서로간의 믿음, 즉 신뢰와 신용”이다. 신용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서 앞으로의 사회발전은 자본과 기술 보다 신용에 의해 좌우될 것이며, 사회적 자본은 신뢰가 정착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한다.
빈곤층 자활 지원을 위해 애쓴 공로로 금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총재도 “신용은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하며, “신용”을 “인권”과 동일하게 하늘에서 내린 천부(天賦)의 권리와 의무로 설파했다. 그가 주도한 ‘무담보 소액대출’ 운동은 상환율이 98%를 웃도는 좋은 실적을 기록하며, 대립적으로만 여겨지던 은행과 무산자가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 주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내고향 사람들이 굳게 지켜온 가치관이 이 시대를 선도하는 세계관을 포용하고 있음은...... 나는 기대한다. 내고향 사람들이 지구촌(Global Village) · 글로컬(Global+Local) · 세계화(Global) 시대를 주도하여 내 고향을 세계 속에 우뚝 서게 하고, 인류의 번영과 공존에 기여할 수 있기를 ....
/김은섭(교육인적자원부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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