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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꽃바람 - 채규판

아무나 따라나서면 넘실대는 바람.

 

햇살이 결린 지창(紙窓)에

 

산향(山香)이

 

프르게 담기고

 

그래서 다사론 생각이여.

 

산에 가면

 

으레히 새가 울지만

 

산울림일까도 몰라.

 

문을 나서면

 

꽃바람 소리,

 

아주 느릿히 닥아오고 있어라.

 

- 시집 <아침의 강(江)> 에서

 

 

동양적 여백과 감각의 기율

 

서정시의 강점중의 하나는, 일단은 읽는 이로 하여금 순수의 강가에서 한없이 설레이게 하는데 있다. 나아가 그리움 하나 지운다는게 그 누구를 죽이는 일보다 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데 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공간은 이 세상 그 어떤 폭력에도 끝끝내 함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스스로 글썽이도록 해 주는데 있다.

 

각설하고, 이 시의 제목을 ‘꽃바람’ 대신 그와 유사한 ‘봄바람’이라 하면 어떨까? 다분히 통속적이다. ‘꽃바람’ 이라 할 때 ‘꽃’이 환기하는 화사함에다 설레임 가득한 분홍빛 기운까지를 더하게 된다. 그 설레임이 첫 행 ‘아무나 따라나서면 넘실대는 바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2~3연에 이르러선 막연한 설레임이 한결 절제되어, 지창(紙窓)에 매달린 햇살과 산내음이 감각적으로 묘사된다. 여기에 ‘새의 울음’ 과 ‘산울림’을 교묘히 뒤섞음으로 동양적 여유라고 할까? 그 여백이 그윽함을 더 해준다. 끝 연 ‘문을 나서면’ 이라는 동작도 결국 ‘아주 느릿히’ 로 처리하여 2~3연의 느림의 미학에 통합되고 만다. 제목이 주는 분홍빛 낭만을 이처럼 동양적 냉정 속에 감각의 기율을 담을 수 있음은 노련한 언어의 절제력과 그 운용의 재치 때문이라고 하겠다.

 

/ 허소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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