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젊은 문학도들은 새로운 열정에 들뜬다. 부풀어 오르는 꿈과 함께 감각의 예민함이 최고조에 오른다.
모든 문학도들을 설레게 하는 신춘문예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 이미 화살은 활에 먹여졌고 그들은 과녁을 정조준하고 있다.
15일까지 신춘문예를 공모하는 본보는 기라성같은 도내출신 등단작가들의 신춘문예 도전기를 마련했다. 시와 소설, 수필 등 분야별로 7명의 등단작가가 펼쳐내는 경험담은 문학도뿐만 아니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할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신춘문예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습작기의 문학소년한테 신춘문예는 모호하고 신비한 암호 같았다. 그러다가 3학년 때 모 지방신문 신춘문예 심사평에 내가 응모한 작품의 제목이 간당간당 걸려 있었는데, 나는 당선된 것보다 더 기고만장하게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던 기억도 있다.
문학으로 삶의 어떤 전환점을 모색해 보려는 사람들에게 신춘문예는 여전히 눈부시고 달콤한 유혹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적지 않은 원고료를 거머쥐는 기회가 인생에 그리 자주 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궁핍한 문학청년이 하루아침에 빛나는 등단작가가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신춘문예는 선망의 대상이 될 만하다. 당선의 쾌감보다는 실패의 쓴맛을 수차례 맛보았으면서도 묵묵히 펜의 칼을 가는 사람들이 신춘문예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신춘문예용 작품의 양산이라는 역기능 때문에 신춘문예는 가끔 입 도마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작품의 실험성과 안전성 사이에서 심사위원들은 대체로 안정성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 패기와 도전이라는 신춘문예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작품이 뽑히는 예도 없지 않았다. 당선작에 대한 표절 시비도 해마다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골칫거리 중의 하나다.
내가 등단할 무렵인 80년대에는 응모작품을 원고지에 정서를 했다. 그래서 원고를 작성할 때 뭔가 '튀는' 아이디어가 없을까 하고 궁리하는 사람이 많았다. 예를 들면 붉은 줄이 쳐진 이백 자 원고지보다는 크기와 디자인이 다른 특별한 원고지를 수소문해 찾았으며, 원고지를 묶는 방법에까지 신경을 썼다. 그만큼 공을 들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신춘문예에 목을 맸다. '원고에 들인 공까지도 문학이다'라는 말을 나누면서 말이다.
우체국에 가서 등기우편으로 원고를 보내고는 당선 통보를 기다리며 자주 등기우편 영수증을 들여다보던 일, 때로는 치기로 당선소감을 먼저 써서 떡하니 벽에 붙여 두었던 일, 상금을 받으면 갚겠다고 큰소리를 치고는 외상술을 무진장 먹던 일도 다 신춘문예 덕분이었다.
이 땅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문학을 꿈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춘문예는 여전히 하나의 꿈의 공장이다. 그 공장이 만약에 없었다면 누가 문학을 꿈의 중심에 턱하니 얹어 놓겠는가.
/안도현(1981년 대구매일신문·1984년 동아일보, 현 우석대 문예창작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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