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이 땅에서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사는 사람치고 신춘문예를 소 닭 보듯 대했던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다양한 등단 통로가 있지만 그 권위와 엄격성이 아직도 유효한 까닭에 글 쓰는 청년들은 이맘때면 열병을 앓는다.
나도 그랬었다. 배추밭에 서리가 내리면 맥없이 머리에 신열이 돋고 조바심이 났다. 신기루를 잡으려는 짓은 아닌지, 인생 손해 보는 짓은 아닌지 끊임없이 치받고 올라오는 잡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벽면 가득 붙여진 신문문예 공모 스크랩을 쳐다보며 원고지를 펼쳤다. (지금이야 컴퓨터 작업이지만 그 때는 타자기 아니면 손으로 쓰는 원고였다.)
그렇게 며칠을 하얀 밤으로 지내고 나면 마감 날에야 겨우 탈고를 할 수 있었다. 우체국 문을 나서며 몰려오던 그 허망함이란 언제 다시 경험해 볼 수 있을까? 그러고는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입술 주위에 물집이 잡히고 입맛이 사라졌다.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한 어떤 이는 이 때 미리 당선소감을 써 놓고 당선 상금을 미리 앞당겨 배주진(背酒陣)을 치기도 했다.
마감 후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아 개별 연락이 온다. 이 때가 크리스마스 전후다. 응모자에게 산타클로스는 문화부기자의 전화 한 통화다. 세상을 다 얻은 듯했던 그 때 그 기분!
사실 신춘문예는 너무 좁은 문이다. 조바심이야 들겠지만 몇 번 쯤의 낙선은 보약이다. 나도 그랬었다. 문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 문을 두들기고 두들겼었다. 작가가 되려는 이가 신춘문예를 로또 당첨정도로 안다면 얼마나 코미디 같은 일인가? 신춘문예 등단 후 별똥별처럼 사라진 많은 작가들이 그래서 정말 안타깝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법이다. 등단작품이 대표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속은 상하겠지만 낙선은 틀림없는 보약이다.
좋은 작품을 쓰려면 시간을 가지고 누가 뭐래도 내 얘기, 내가 자신 있는 얘기를 써야 한다. 내 얘기 속에 시대의 코드를 녹여내야 한다. 끊임없는 퇴고 하는 일도 중요하다. 응모자가 초보운전이라면 심사위원은 고속버스 운전사다. 글자 하나, 낱말 하나, 문단 하나, 글 한 편 푹 익혀야 그들의 눈에 들 것이다.
글쓰기를 즐기는 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신춘문예 도전은 손해가 아니다. 평생을 살면서 좋아하는 일 하나에 미쳐 입술이 부르트도록 열망할 기회가 언제 갖겠는가. 탈고 후 몰려드는 뿌듯함과 허망함은 또 언제 경험해 볼 것인가.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일, 그 경험의 공유로 그대는 오래 만날 나의 친구요 동지다.
/김종필(94년 전북일보 ‘첫눈 오는 날’, 전주효림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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