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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중단할 수 없는 발걸음 - 노경식

노경식(극작가,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어느 호사쟁이 역술가의 꾸민 말인지는 모르나 ‘황금돼지’의 해 2007년이 밝아온 지도 벌써 1월 달의 둘째 주를 지나가고 있다. 전북일보의 애독자 온 가정에 부디 건강과 행운이 다 함께 충만하시기를 ~

 

나도 올해는 좀더 생광스런 일이 일어나기를 빌어보며 이것저것을 마음속

 

에 그려본다. 그 중의 한 가지는 국립극장으로부터 위촉 받고 있는 창작극을 기필코 완성해내는 작업이며, 또 하나는 내가 지금 관련 맺고 있는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회의 일. 벌써부터 2, 3년째 ‘북한연극 바로알기’ 차원에서 해마다 토론회를 갖는다, 심포지엄을 연다 이것저것 노력은 하고 있으나 별무 성과다. 중국의 베이징이다 선양이다 하고 방문해서 북쪽 인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는 등등. 허기사 하는 모든 일이라는 것이 첫 숟갈에 배 부를 수가 있으랴.

 

지금 남쪽 연극인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서울평양(평양서울)연극제’ 창설의 발상은 매우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다. 그 옛날, 1930년대의 일제강점하에는 ‘경평(京平)축구대회’라는 멋들어진 행사가 있었단다. 그러니까 서울 경기중학과 평양의 숭실학교 학생들이 만나서 해마다 한데 어울어져 신명나게 한바탕 웃고 떠들어대며 북과 남 지역간의 친목과 스포츠 발전을 위해서. 그렇다면 6.15공동선언 정신을 계승하고 평화통일과 남북화해를 위해서 한바탕 신명나게 굿판을 벌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 엄혹했던 일본제국주의 시절의 스포츠 행사가 “나라 잃은 설음”의 한풀이이요 신명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광대놀이 굿판은 민족분단으로 “허리 끊어진 설움”의 한풀이이자 신명이 아니랴!

 

지난 해에는 ‘한민족 100년 대토론회’를 열어 멀리 중아아시아의 카자흐스탄(알마티)과 중국 연변에서 동포 연극인들이 왔으나, 정작 가장 가까운 북쪽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문이란 두드리면 열리겠지, 머. 해서 금년엔 평양연극의 초청공연을 추진할 생각이다. 공연작품은 북쪽이 자랑하는 <불후의 고전적 명작- 성황당> 이나, 아니면 <혁명연극- 딸에게서 온 편지> 정도. 두 작품은 각각 미신타파와 문맹퇴치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서 이데올로기와 사상면에선 좀 떨어져 있는 셈. 그런데 하는 일이 엉성하고 서툴러서 그런지 아직은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지난 번의 토론회 때 개회사에서 한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우리는 여기서 중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 연극인의 걸음걸이가 비록 지지부진하고 미미하며, 별로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는 느린 소 걸음일망정 이대로 중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 있고, 내일 아니면 다음달, 또 다음달이 아니면 내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름대로 우린 어떤 신념과 의지와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쪽과 북쪽은, 우리가 엊그제 10월 3일 개천절을 기념하여 모신 단군성조야말로 남과 북의 똑같은 할애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옛날 고조선에서부터 3국시대, 고려왕조와 조선조 때까지 누천년의 역사와 정치 속에서, 똑같은 문화와 똑같은 말, 똑같은 풍속으로 더불어 살아왔으며, 우리의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을 남과 북은 똑같이 나라 글자로 함께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까. 그것은 지난 세기에 있었던 처절한 우리의 독립투쟁 역시 선열들의 공동목표는 남과 북을 구분할 필요도 없이 똑같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국권회복이요 민족해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평범하고 지당한 역사적 진실과 민족적 동질성을 설명하자면 끝도 없을 것입니다. --’

 

 

* 1938년 남원 출생으로 남원용성초, 중, 남원농고, 경희대를 졸업했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철새’ 당선으로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달집’ ‘징비록’ ‘소작지’ ‘井邑詞’ ‘하늘만큼 먼나라’ ‘萬人義塚’ ‘징게맹개 너른들’ 등 장단막극 30여 편이 있다. 백상예술대상 희곡상(3회)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 대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동랑유치진 연극상, 한국희곡문학상 대상 서울특별시문화상(연극)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고문,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경식(극작가,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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