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종교가 현실적인 고(苦)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줬다면 미래의 종교는 정신적인 고(苦)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해답은 소태산 대종사가 원불교를 이뤄낸 ‘일원회상’(一圓會上)의 진리에 있다.
모든 존재는 하나의 진리 속에서 움직이는 한 존재라는 것. 각각의 존재들이 나뉘어 살고있지만 세계가 서로를 하나의 공동생명체로 인식하면 정신적인 고통을 덜 수 있다는 뜻이다.
원불교 전북교구장에 새롭게 취임한 명산 허광영 교무(56) 역시 세상에 ‘일원회상’의 씨앗을 뿌리자고 말했다. 그는 “‘일원회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교무들과 교도들이 화합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출가를 해서인지 스스로를 옥죄이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밀려서 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길이어서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난히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부모님. 전주북중과 전주고를 졸업한 장남이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는 컸다.
잘 사는 사람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마음이 갔고 외래 사상에 대한 반발심이 생겨났던 고등학교 시절, 정신적인 공부가 목말랐던 친구 10명과 ‘송암회’를 만들어 교동교당에서 처음 원불교를 만났다. 그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의 정신개벽사상에서 앞으로의 관건은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결국 말만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1976년 전무출신이 된 허교구장은 잠실지구장 및 잠실교당 교감으로 재직했던 지난 4년을 제외하고는 전북을 떠나본 적이 없다. 서울에서 바라본 전북은 순박하고 인정이 넘치지만 진취성과 미래지향성이 부족한 정체된 도시. 그는 “지역사회에서 원불교의 역할을 고민하겠다”며 “원불교 안에서의 낙원을 꿈꾸기 보다는 도민과 더불어 마음을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성장이 완성은 아니라고 봅니다. 선진들의 피땀으로 원불교가 어느 정도 성장했다면 이제는 차곡차곡 안을 채울 때가 됐습니다. 교화프로그램을 다양화시키고 교리를 끊임없이 재해석해 교도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잠실교당 근무시 ‘한울안열린학교’를 개설, 재가인력의 교화활동과 교당의 지역사회 참여에 가능성을 제시한 허교구장은 종교적 색채를 조금 덜어내더라도 원불교가 일반인들과 가깝게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각종 교리학교에서 교리강좌를 전담할 만큼 원불교 교리에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을 받아온 그는 교리강습과 교리공부방 등을 활성화시켜 진리적 종교로서 교도들을 교리적으로 성숙시킬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전북교구는 원불교를 전국적으로 파종시키는 못자리와도 같습니다. 우리 교구가 교세 발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원기 100년을 준비하며 원불교의 행정중심이 점차 수도권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그는 가장 규모있는 교구(교당 90개, 기관 70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좌산 이광정 종법사 시절 초대 법무실장을 지낸 허교구장은 좌산 상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고, 교단 주인은 혈심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스승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는 그는 “두가지 말씀을 직무 수행의 지침으로 삼고 함께 일하는 교무와 교도, 여러 지도자와 도민들을 전부 어른으로 모시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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