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의 경제국가로 끌어 올린 성장엔진이 꺼지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기업투자나 수출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꿈나무들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이다.
새해 벽두에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과학기술계의 6개 단체가 이례적으로 함께 모여 과학교육의 위기를 한 목소리로 외치고 나섰다. 교육인적자원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의뢰해 추진 중인 초·중등학교의 교육과정 개편작업이 오늘 2월 최종적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 8차 교육과정의 개편 방향이 현재 위기에 봉착한 과학교육의 기반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005년부터 시행한 7차 교육과정에서도 학생들의 자율과 선택권을 강조하다 보니 과학교육이 크게 부실해졌다. 지금부터 20년 전 고등학교의 이수 과학교과는 이과생이 32단위, 문과생은 16단위였으나 지금은 각각 6단위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그 교육내용도 대폭 축소되었다.
고 1의 경우 진정한 통합과학의 목표 달성을 위한 충분한 시수가 확보되지 못했으며, 다양한 과목을 가르칠 전문성을 갖춘 교사 양성에도 실패했다. 그 결과 이공계 진학생의 경우에도 과학의 핵심인 물리·화학의 심화과정을 선택한 학생이 각각 7퍼센트와 13퍼센트에 불과해서 대학에서의 정상적인 전공교육이 불가능해졌다.
피?수학과목의 분리와 선택화로 학생들의 수학실력이 크게 떨어져 서울의 일류 공과대학 진학생이 적분기호를 처음 보았다는 경우도 생겨났다. 대학이 이공계 진학생에게 고교 수준의 수학과 과학을 다시 가르치고 있어 대학교육의 효율성 감소와 함께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현실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미래 과학자의 양성은 고사하고 일반 시민도 최소한의 '과학적 소양'으로 무장시키지 못하고 있다. '과학이란 새로운 생각을 시험하는 과정'으로 어린이들에게 과학교육은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 함양의 산실이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이 현재 잘못된 과학교육 시스템의 틀에 갇혀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시하는 개편안은 오로지 학생의 선택에만 의존함으로써 공교육의 목표가 실종되고 불필요한 과목간 경쟁만 부추기고 있다.
피?'수학'·'과학'·'기술가정'을 함께 묶은 불합리한 '과목군' 설정으로 교육과정의 극심한 왜곡이 우려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학과 과학의 핵심과목을 '필수선택영역'으로 설정하여 합리적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과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성공한 것은 우수한 노동력과 높은 기술력 때문이었다.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을 필요로 하는 21세기 고도의 지식기반 사회에서 우리나라가 국민총생산 3만불의 벽을 넘어 4만불에 이르는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과감한 승부수를 과학교육에 던져야 한다.
과학교육은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의 핵심 과제이다. 현대 과학은 단지 과학기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민주 시민이 '과학적 소양'으로 가져야 하는 '모두를 위한 과학'이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 과학기술의 판도는 기존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중심에서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권으로 이동하며 치열한 글로벌 경쟁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국가적 관점에서 과학교육의 중장기적 방향을 그려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미국의 경우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의 지시로 매년 1만 명의 수학·과학 교사를 양성하고 미국과학재단 예산의 10%를 과학교육에 투자하는 등 수학·과학교육의 강화를 포함한 국가적 과제를 미국과학원에서 제시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21세기 들어 '과학교육흥국'을 전략방침으로 두고 과학교육에 엄청난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70년대부터 학생들의 선택권을 강조한 '유토리' 교육의 결과 드러난 학력저하를 절감하고, 국어· 수학·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마련하려는 '교육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대선의 해이다. 그럴수록 뉴스의 이면에서 미래의 과학교육 강화를 위해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과학자와 과학기술단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우수한 인적자원의 육성을 통해 20년 후 미래 성장동력의 신형 엔진을 새로 장착하기 위해서 반드시 아시아와 세계를 선도하는 최고 수준의 과학교육을 위한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 이것이 향후 세계와의 무한 경쟁을 치러나갈 우리의 차세대 과학기술자와 미래 과학기술중심사회의 민주시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선물이다.
/김승환(포스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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