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아없어진 지문...수많은 흉터...
“몸에 그린 그림은 몰라도, 아마 손에 새긴 흉터는 ‘조폭도 저리 가라’일 겁니다.”
칼, 망치, 대패…. 이름만으로도 섬뜩한 연장들을 다루다 보니, 몇 십 년씩 조각을 한 사람의 손에는 흉터가 많다. 그럼에도 장갑은 절대 낄 수 없다.
손 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감각을 예민하게 느끼며 작업해야 하는 공예가들. 그들에게 목숨과도 같은 손은 그러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에는 가장 부끄러운 신체부분이다.
“손에 보험이라도 들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아마 보험회사에서 받아주지 않을 겁니다. 몇 년 전부터 손목터널증후군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데다가 작년에는 사고까지 당했잖아요.”
목공예가 김종연씨. 지난해 12월 전기대패를 작동하다 손을 다친 그는 왼손에 동맥과 신경을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27년 동안 장칼에 손 몇 센티미터 정도 찢어지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가장 큰 사고였다.
“항상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잠깐 방심한 사이 순식간에 다쳤죠. 손이 전부인데, 다쳤을 당시에는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죠.”
50여일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그는 작업이 지연되는 게 가장 답답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손가락이 완전히 구부려지지 않는 상태에서 서둘러 조각도를 잡은 이유다.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는 목공예가들 뿐만이 아니다. 도예가들은 흙을, 한지공예가들은 풀을 매일 만지다 보니 그들에게서 아름다운 손을 기대할 수는 없다.
특히 한지공예가들의 손가락에는 지문이 남아나질 않는다. 한지를 꼬아만드는 지승공예 덕분(?).
실제로 35년 동안 작업을 해 온 한지공예가 김혜미자씨는 “4년 전 의걸이장을 만들 당시 한없이 꼬다보니 미국 비자를 받는 과정에서 지문이 등록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회상했다. 젊은 시절 꽃꽂이를 했던 그는 “한 때 손에 풀물이 들어 손톱이 초록색이 돼 다닐 때가 있었다”며 “지금은 지문이 다 닳아없어져 손바닥이 반질반질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공예가들은 같은 작가라도 작업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손은 다르다고 말했다. 늘 손에 힘을 주고 작업을 하다보니 통증은 물론, 손 모양이 변형되기도 한다.
특히 여성 작가들은 손에 컴플렉스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손을 예쁘게 가꾼다는 것은 불가능”이라며 손이 갈라지지 않도록 보습제를 바르는 정도가 전부라고 말했다. 물론, 손톱을 기르거나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
손가락을 주무르거나 손바닥을 위로 젖히는 등 공예가들에게는 간단한 손 스트레칭이 지난한 작업에 큰 휴식이 된다. ‘손의 상처가 곧 훈장’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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