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소중한 풍경, 넉넉한 詩語로 담아...사람도 술도 끊고 낮엔 일하고 밤엔 시써
만날때마다 박성우 시인은 먼저 수줍게 웃는다. 말수는 적고 수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보태지 않되 친절하다. 문태준시인은 시도 그러하다고 했다. ‘조용한 배려와 연민의 시심이 그에게는 있다. 더 많은 언어를 서둘러 소유하려는 시대에 그는 최소한의 언어를 숙성시킨다. 알 듯 모를 듯한 사건을 함부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나의 말을 아껴 생긴 작고 따뜻한 곳에 가난한 사람과 사물을 흔쾌히 끌어다 앉힌다.’
“시를 쓸때 가장 행복하다”는 박성우시인. 선생님이 건네준 연습장을 들고 학교운동장에서, 툇마루에서, 들판에서, 쉼없이 ‘시를 끄적였던’ 초등학교 6학년때가 서른여섯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꼽는다. 그 다음이 지난해다.
시집을 내기로 작정한 시인은 한 해동안 사람도, 술도 끊었다고 했다. 낮엔 일터였던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에서 일하고, 밤엔 시를 썼다. “사람 맛을 보면 외로움을 못 견디듯, 고요한 시간의 맛을 알면 빼앗기기가 싫어진다”고 했다. 지난핸 창작을 위해 고요한 시간을 즐겼단다.
첫 시집 「거미」(창비)로 문단의 ‘날카로운 주목’을 받았던 시인은 적잖은 부담감에 시달렸다. 두번째 시집이 다소 늦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도 꾸준히 문학잡지를 통해 시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55편을 추려 두번째 시집 「가뜬한 잠」(창비)을 묶었다.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동네 우물에 부었다/사카린이랑 슈가도 몽땅 털어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삼학년’)
“사물이나 생각을 수용하거나 느껴보지 않고 쓰는 것은 매우 힘이 듭니다. 그렇다보니 경험한 일 또는 주변의 것들이 소재가 됩니다.” 시 ‘삼학년’은 초등학교 3학년때 시인이 저지른 ‘사건’이다.
2년여동안 살았던 한옥마을도 시로 들어앉았다. ‘봄날은 간다’ ‘초록바위’ ‘김일무선’ ‘장담그기’ ‘싸전다리’ ‘입춘윷판’ 등은 한옥마을서 본 풍경들이다. “요즘 시는 산문적이고 난해합니다. 독자들과의 소통도 안되구요. 저는 소통되지 않는 문학은 감히 ‘독선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문학은 작가와 독자의 소통이 이뤄져야 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옥마을 풍경이 시 속으로 들어간 데에는 경험을 소재로 삼는 까닭도 있지만 오래된 것, 낡은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새롭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농촌의 인심과 풍물도 여전히 그의 시심을 자극한다.
‘쌀 됫박이나 팔러 싸전에 왔다가 쌀은 못 팔고 그냥저냥 깨나 팔러 가는 게 한세상 건너는 법이라고, 오가는 이 없는 싸전다리 아래로 쌀뜨물같이 허연 달빛만 하냥 흐른다/야 이놈아, 뮛이 그리 허망터냐?’(‘싸전다리’)
“이번 시집은 잔잔한 울림을 주는 시들로 골랐습니다. 편하게 봐주길 바랍니다.” 시집을 내놓으면서 “패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시인은 그래도 시인의 목소리가 큰 것 보다는 독자가 생각할 여지가 많은 쪽을 택했단다. 이 역시도 그 다운 선택이다.
‘뒤척이는 밤, 돌아눕다가 우는 소릴 들었다/처음엔 그냥 귓밥 구르는 소리인 줄 알았다/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누군가 내 몸 안에서 울고 있었다//부질없는 일이야, 잘래잘래/고개 저을 때마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마르면서 젖어가는 울음소리가 명명하게 들려왔다/고추는 매운 물을 죄 빼내어도 맵듯/마른 눈물로 얼룩진 그녀도 나도 맵게 우는 밤이었다’(‘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들리다’)
염무웅평론가는 “순수한 슬픔은 그 자체가 지상의 오탁(汚濁)을 정화하는 고귀한 감정인데, 문학이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슬픔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불운한 사람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슬픔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 시집의 출간을 축하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발동이 걸린 시인은 올해도 ‘건전하게’ 살 작정이다. 옥정호 인근에 마련한 새 삶터를 가꾸는 육체적 노동과 시창작을 이어가는 정신적 노동의 조화를 이루며 올해도 ‘행복한 해’로 만들 계획이다. 5월이면 아기아빠도 되고, 하반기에는 동시집도 나올 것 같다. 돼지띠 시인이 전하는 황금돼지해 소식이 풍성하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