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다시 시작된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행정구역으로는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자리하고 있는 왕궁리 유적은 사적 408호로 최근 역사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서동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대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무왕이 도읍을 이곳으로 옮겼을 것이라고도 하고 이궁이나 별궁을 두었다고도 하는 곳이다.
1989년부터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유적에는 국보 289호인 석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석탑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국보 123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왕궁리 5층 석탑을 보수하는 작업은 1965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이루어졌는데 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탑을 받치고 있는 기단부와 1층 지붕돌 윗면에서 사리장치와 관련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기단부 윗면에 品자형으로 뚫린 3개의 구멍 중 동쪽 구멍에서는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는 청동여래입상 1구, 청동요령 1개가 나왔고, 북쪽구멍에는 향이 있었고 나머지 구멍은 이미 도굴된 듯 비워진 상태였다.
1층 지붕돌 윗면 중앙에 뚫려있는 2개의 구멍에서는 각각 녹색 유리사리병, 순금금강경판이 있었다. 지붕돌 윗면 사리구멍에서 확인된 유물들은 2중으로 된 상자, 즉 외합과 내합에 들어 있었는데 외합은 장식도 없고 칠도 벗겨져 있었다.
연꽃 봉오리모양의 마개가 있는 녹색의 사리병이 있는 내합은 뚜껑 윗면에 반쯤 핀 연꽃 봉오리, 그리고 그 주변에 구슬무늬가 새겨져 있다.
금강경판이 들어있던 내합은 뚜껑 윗면에 금고리를 달아 손잡이를 만들고 국화 문양을 새긴 것으로 내합들은 도금 상태가 완전한 것이었다. 순금금강경판은 금강경의 내용을 19장의 순금판에 새기고 접어서 2개의 금줄로 묶은 것이다. 1층 지붕돌위에서 나온 이 유물들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에 대한 의식이 낮은 수준이었던 1965년 당시 이 탑을 수리하면서 출토된 이들 사리장치는 놀랄만한 것이었으나 일반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보다는 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탑을 만들 때의 장인과 해체하는 사람의 이름이 같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 더 인구에 회자되기도 하였다.
아무튼 이 탑에 대한 해체와 복원작업은 우리 지역에서 이루어진 초기의 문화재관련 작업이며 원광대학교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세워지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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