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영 주체를 대학, 민간단체, 공모교장 등에 개방(위탁)하고 대폭적인 자율성과 책무성을 부여함으로써 교육과정 운영 및 교수·학습방법 등을 혁신적으로 운영하는 학교. 개방형 자율학교를 설명하는 말이다. 도내지역의 첫 개방형 자율학교인 정읍고가 이제 100일째를 맞는다. 지난 3월 2일 부임한 소찬영 교장으로부터 개방형 자율학교의 가능성을 점쳐본다.
#1. 정읍고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 정문에서 왠지 낯선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소찬영 교장이 정문으로 들어오는 학생들과 일일이 손바닥을 마주친다. ‘하이 파이브’다. 소 교장이 부임한 3월부터 계속되온 ‘등교 세리모니’격이다. 소 교장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고, 학생들에게 뭔가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이벤트가 없을까 고민하다 ‘등교 하이 파이브’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 정읍고 학생들은 지난달 ‘선택형 수련회’를 다녀왔다. 동학유적지탐방, 지리산 체험, 지망대학탐방 등 세가지 테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연수를 떠났다. ‘학창시절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수련회가 천편일률적이고 일방적인 행사에 그쳐선 안된다’는 학교측의 배려가 숨어있다.
#3. 해마다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정원을 채우지 못했던 정읍고. 올해는 사정이 달랐다. 150명 모집에 159명이 지원해 9명을 탈락시켰다. 신입생 가운데는 예년과 달리 성적우수자들이 많다는 게 학교측의 귀띔이다.
개방형 자율학교 정읍고는 여느 인문계고교와 다르지 않다. 다른 학교처럼 학생들은 ‘대학입시’라는 좁은문을 통과하기 위해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개방형 자율학교=대안학교’라는 편견은, 실제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읍고의 변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가 소찬영 교장이다. 소 교장은 도내지역의 첫 평교사출신 교장. 지난해까지는 정읍고에서 평교사로 근무했던 소 교장은 지난해 학교운영위원회와 도교육청 인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교장으로 선출됐다.
소 교장이 부임하면서 던진 화두가 ‘교육은 감동이다’. 그리고 그 화두를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이 ‘인성교육에 기반을 둔 학력신장’이다. 학생들의 인성과 학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쫓겠다는 것이다.
소 교장은 “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공부도 잘하는 법”이라면서 “바른 생각과 습관이 길러지면 자연스럽게 성적도 오르는 법”이라고 말했다. 소 교장은 이를 위해 학생들의 자율성을 철저히 존중하는 한편 기숙사운영 등 학생지도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소 교장은 “체육대회의 기획·진행은 물론 시상까지 학생들에게 맡기는 등 학생자치활동을 강화했다”면서 “기계화·정형화가 아닌 맞춤형 밀착지도만이 학생들의 집중력과 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읍고가 온전한 개방형 자율학교로 정착하기에는 아직 갈길이 멀다. 무엇보다 예산이 태부족하다. 인성과 학력을 동시에 높이기 위해 열악한 학교환경을 개선시켜야하지만 현실은 밝지않다. 교육부는 개방형 자율학교에 해마다 1∼2억원씩을 지원하고 있지만, 교수·학습활동비로 한정하고 있어 환경개선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정읍고측의 설명이다.
또 정읍고를 제외한 나머지 개방형 자율학교(서울 원묵고·부산남고·충북 목령고)의 경우 석·박사급의 우수 교사 확보에 총력을 쏟고 있는 반면 정읍고는 교사확보가 평년작 수준이다. 정읍고는 소 교장 부임이후 9명의 교사를 선발했으며, 이 가운데 진학지도 전문가는 2∼3명에 불과하다는 것. 개방형 자율학교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씻어내는 것도 정읍고의 당면과제 가운데 하나다.
소 교장은 “개방형 자율학교로 전환한 지 불과 100일이 지난 만큼 해야할 일도, 갈길도 멀다”면서 “신설학교가 아닌 만큼 기존의 시스템을 안아야하는 등 부담이 적지않지만 부단한 노력을 통해 교육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학교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수학여행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현지에서 ‘너희들 어느 학교 학생들이냐’고 묻자 일제히 ‘우리는 전국에서 4개 학교밖에 없는 개방형 자율학교에 다닙니다’고 외치더군요. ‘우리 아이들의 자부심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소 교장은 “학교의 근본은 수업인 만큼 교수 학습방법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학생들이 수업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를 최대한 끌어 올리리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막 고고성을 터트린 정읍고가 ‘공교육 업그레이드’를 주도하는 선진학교로 발돋움할 지, 두고볼 일이다.
소찬영 교장은
소 교장은 전주고와 공주사대를 졸업하고 지난 81년 교직에 입문했다. 첫 교편을 잡은 곳이 바로 정읍고다. 전라고와 전주고 등을 거치면서 진학지도 전문가라는 평가를 얻었다. 다시 정읍고로 부임한 뒤 지금까지 ‘마음의 모교’에서 근무중이다.
소 교장은 “개방형 자율학교가 교육계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구현할 것”이라면서 “그 시기가 지금이고, 장소는 정읍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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