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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천 이영춘 박사 생가 역사적 가치 상실 위기

'한국의 슈바이쳐'...소유자측 "교육용 시설...집 비워달라" 요구

근대초기 건축물로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된 군산시 개정동 "이영춘 생가"에 거주하고 있는 고 이영춘 박사 자제인 이주운씨가 집을 비워달라는 소유주의 요구에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군산=오균진 ([email protected])

‘한국의 슈바이쳐’, ‘예방의학의 선구자’, ‘공중보건의 개척자’, ‘농민의 성자’로 불렸던 쌍천 이영춘 박사(1903∼1980).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된 군산시 개정동 413-11번지 ‘이영춘 생가’에 살고 있는 후손들이 집을 비워져야할 딱한 처지에 놓여있다. 생가에 보존된 이영춘 박사의 각종 유물들도 집을 떠나야할 후손들과 함께 역사적으로 그 가치를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소유자인 학교법인 경암학원의 군산간호대학측이 집을 비워줄 것을 수차례 요구해왔습니다. 법적 판결이 나는 이달 28일쯤 쫓겨날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아버지의 흔적을 지키지 못해 억장이 무너질 뿐입니다.” 아들 이주운씨(58)는 아버지가 직접 가꿨던 정원의 나무들과 집안에 있는 유품을 지켜내지 못해 죄스러울 따름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거실에 위치한 100년 이상된 서재와 책상, 고종황제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침대와 소파, 사진, 그림, 친필 붓글씨, 이 박사가 직접 만든 8쪽짜리 병풍 등 집안 곳곳에는 고인의 체취가 남아있는 듯 했다.

 

“아버지의 유물은 생가를 떠날 때 그 가치를 잃게 될 것입니다. 또한 후손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보존할 능력도 없습니다.” 길거리에 나앉는 것 보다 이 지역의 자랑거리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못해 참담하다는 이씨. 그는 ‘이영춘 생가’에서 선친의 유품과 정신이 함께 유지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던 농민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농촌보건운동의 선구자였고, 해방이후 개정병원의 설립자인 이영춘 박사. 이 박사가 반평생 거주하면서 붙여진 '이영춘 생가'는 일제시대 엄청난 재력의 농장주였던 구마모토 리헤이에 의해 1920년대에 건립됐다. 이 박사가 건물의 등기를 자신 앞으로 하지않고 그가 설립한 한국농촌위생연구소 소유로 해놓았다가, 개정병원이 지난 2001년 경매로 넘어갈때 이 건물도 함께 처분됐었다.

 

소유자인 군산간호대학측은 “지난 2001년 경매로 건물의 소유주가 된 이후 6년이라는 세월동안 후손들의 처지를 이해해왔지만 더이상 양보할 수 없는 실정이다”면서 “학생들의 교육용 시설인 만큼 후손들은 집을 비워져야 할 것이다”고 못박았다.

 

홍성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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