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이 오색찬란한 빛을 한껏 뽐낸다. 초여름 더위를 씻어내리는 밤바람이 시원스럽다. 소나무 향이 온몸을 훓고 지나간다. 사람들의 발소리만 밤의 정적을 가를 뿐이다.
고창읍성의 야경이 눈을 즐겁게 한다. 일상사에 찌든 피로가 녹아내린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지난한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밤마실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해부터 두차례 공사를 통해 고창군이 밝힌 읍성의 야간 조명은 볼거리가 풍부하다. 길이 1684m짜리 금빛 용이 나타난 듯싶다. 야트막한 야산을 휘감아 도는 성곽이 용의 뒤틀린 모습과 흡사하다.
해가 기울어 어둑어둑해지자 읍성 아래 놓인 조명이 기지개를 켠다. 성곽과 그 사이로 뻗은 나무줄기가 황금 빛으로 태어난다. 나무는 눈꽃처럼 반짝인다. 550년 세월을 지켜온 성곽은 일제 침략기와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도 무너지고, 찢겨진 곳 하나 없다. 이끼와 넝쿨에 뒤덮인 돌 하나 하나는 질곡의 역사를 묵묵히 걸어온 옛 조상의 발자취와 닮았다. 600개 가까운 오색 조명을 받은 성곽에서는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쉰다.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세워진 전국에서 유일하게 원형 보존되어 오고 있는 석성이다. 일명 모양성이라고 불리고 사적 145호로 지정돼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의 화성이나 진주성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건축미와 조형미가 뛰어난 조선시대 최고의 건축물이다. 매년 음력 9월 9일에는 모양성제가 치러지는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에 고창군이 야간조명의 옷을 입힌 것은 새로운 볼거리 제공을 통한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지난해 5월 고창읍성 야간경관조명 설치공사를 시작, 1차로 공북루, 풍화루, 동문, 서문, 동헌 등에 243개의 조명을 설치했다. 조명설치는 고창읍성을 찾는 관광객은 물론 주민들에게도 야간 볼거리를 제공해 새로운 관광자원을 개발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 읍성을 찾은 관광객은 74만명. 지난해에는 20만명이 늘어난 94만명이 찾아 야간조명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고창군의 밤역사를 새로 쓴 셈이다.
적지않은 성과를 거둔 군은 올해 2차 조명 공사를 마무리, 596개의 조명이 성곽과 관아건물 등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조명은 깊은 잠에 들었던 읍성을 깨웠다. 낮이 아니면 들어가기 겁나던 성안도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품에 안겼다. 정문으로 쓰이는 공북루로 들어서면 너른 뜨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잘 조화된 수목과 동헌, 관청, 객사, 작청, 풍화루 등이 은은한 빛과 함께 곰살스레 다가온다.
공원을 벗어나 성벽위에 올라서면 고창 읍내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타원형의 성곽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뗄 때마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1시간 남짓 읍성 야경과 함께 산책을 하면 일상의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진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읍성의 야간관광시대를 연 야경 효과는 만점이다. 5월말 현재 관광객 27만7000여명이 읍성을 찾았다. 물론 주민들도 야경을 벗삼아 성곽 주변을 돌며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모습도 눈에 띄게 늘었다. 13일 밤 읍성을 찾은 관광객 이모씨(38·서울시 논현동)는 "고창에서도 이런 밤 경치가 있는지 몰랐다"며 "장엄한 성곽을 배경으로 현란한 야간조명이 별세계를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일부 주민들은 야경에 필요한 전기 사용료에 혈세를 낭비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현재 고창읍성의 전체 전기소요량은 하루 평균 2만2760원으로 이는 한 달 평균 70만5130원. 관광객 유치와 주민 여가선용 측면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감안하면 경제학적 측면에서도 충분히 남는 장사인 셈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읍성의 야경이 관광객의 오감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각적인 효과는 충분하지만 청각과 미각의 즐거움은 찾아볼 수 없다. 야경과 어우러진 공연을 신설한다든가 관광객들이 머무를 수 있게 하기 위한 숙박 및 편의시설 부족이 아쉽다.
반면 고창이 지닌 다양한 문화관광자원은 이런 아쉬움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요즘 한창 수확중인 복분자 밭에 나가 검붉게 익은 복분자 열매를 따보는 체험도 좋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군에 들러 옛선조들의 지혜와 웅대한 기상에 빠져 봄직하다. 여기에 풍광이 수려한 선운산을 찾아 산행을 하거나 심원의 갯벌체험마을에 들러 바지락 캐기의 즐거움에 흠뻑 젖어도 좋다. 뱃속 허기를 달래는데는 고창에서 나는 풍천장어가 인기만점이다. 담백한 소금구이와 달콤한 양념구이 장어 한 점과 복분자술 한 잔을 함께 한다면 고창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고창 구석 구석을 살펴본 뒤 읍성의 야경을 감상한다면 나들이의 기쁨은 차고 넘친다. 읍성의 야경이 고창 관광의 화룡점정인 셈이다.
읍성은 원형이 잘 보전된 자연석 성곽이라는 훈장과 함께 답성놀이라는 전설까지 간직한 문화유산이다.
음력 윤달 부녀자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성곽 위를 세차례 돌면 무병장수하고 죽어서는 극락왕생한다는 전설이다. 지금도 답성놀이를 재현하고 있다.
고창 읍성의 밤이 환해졌다. 이번 주말 조명에 고즈넉함을 더하는 읍성도 보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성곽을 따라 산책하길 권한다. ‘고창읍성의 달밤’은 하절기 동안 오후 11시까지, 동절기에는 오후 10시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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