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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만난 작가] 시인 박태건이 만난 평론가 오하근

문학의 숲 감싸안은 아름드리 나무처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든 그 사람이어!

 

사랑하든 그 사람이어!

 

(김소월 ‘초혼’의 일부)

 

선생을 처음 뵌지 한 십오년은 되었겠다. “이게 뭔 뜻이여?” 특유의 속필로 칠판에 쓴 시는 ‘김소월’이었다. 인문대학에 다녔던 또래 친구들과 여학생들이 참하고 예쁘다는 사범대학에 가서 들은 첫 수업이었다. 우리 사범대학 원정대원들은 잘 보이려는 욕심에 저마다 손을 든다. “망부석 설화를 이야기 한 거 같은 데요……” “제 생각은 좀 다른 데요……” 어쨌거나 잘 보이려는 게 우리들의 목적이었다. 그때 평론가 선생이 한 말씀 하신다. “이건 원망이여, 님은 갔는데 나만 남으면 그게 비극이지 뭐여”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하다. 예나 지금이나 평론가 같이 안 생기신 선생을 다시 뵌 건 아침, 수목원이다.

 

 

아침 고요 수목원

 

시인은 길을 내는 몽상가, 소설가는 여행가, 평론가는 지도를 그리는 자라고 했던가? 선생이 나무며 들풀의 이름을 짚으며 천천히 걸어오는 동안 수목원의 아침은 고요해진다. 전주 초입에 자리 잡은 이곳은 한국도로공사에서 조성한 곳이라 했다. 인근에 난 호남고속도로엔 아침부터 차 지나가는 소리가 이른 매미소리 같다. 대부분 서울로 가는 차와 내려오는 차들일 것이다. 국민의 사분의 일이 수도권에 모여사는 나라. 정치, 경제, 문화의 90%가 집중돼 있는 사상의 블랙홀. 선생의 말을 옮기면 “세상은 한 가지 잣대로 평해선 안 된다” 일률적인 문화는 생명이 짧기 때문이다. 나무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선 반대쪽으로 뻗은 가지가 필요한 법이듯, 풍성한 열매가 맺기 위해선 제 가지에 난 나뭇잎들은 거름이 되어야 하겠지. 잠에서 막 깨어난 잎들이 말을 걸어 올 것만 같은 수목원의 아침. 서 있는 거리만큼 길이 된 나무들이 기지개를 편다.

 

선생은 말실수가 없이 자분자분하다. 눈길을 걷는 사람은 뒤에 올 사람을 경계하라는 뜻인가. 선생의 행간 읽기 수업은 깐깐하기로 유명했다. 선생의 수업을 꼼꼼히 적은 노트가 서울 학원가에서 임용고시 교재로 쓰인다는 이야기는 졸업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교육자로서 부지런한 선생은 해성고 교사 시절 ‘국정교과서의 오류’라는 제목으로 잡지 「신동아」에 기고한 일이 있었다. 이 일로 도 교육감의 호출을 받아 자칫 교사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뻔했다고. 허나, 전북일보 등에 이 일이 대서특필되고 문교부 관계자가 살펴보니 선생의 말이 옳았단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여서 언어의 상징성을 캐는데 치밀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자칫 백수가 될 뻔 했다~아” 소탈하게 웃는 선생을 처음 보는 이는 누구나 대학교수 그것도 깐깐한 평론가의 입성으로 보지 않는다. 평소엔 대부분 잠바 차림이고 강의시간에 입는 양복도 ‘태’가 잘 안난다.

 

“나는 태 내는 게 싫어”라고 수줍게 고백하는 선생. 그래서 일까? 교수시절 보직교수 한번도 안 했고 무슨 예술단체니 하는 것도 가입을 안 하셨단다. 그 이유를 여쭙자 패거리 만들어서 잰체하는 것이 싫었다고. “떠벌리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고 말씀하실 때의 눈빛이 단호하다. 그래 선생은 평론가였지….

 

나는 선생께 보신탕 먹는 법을 배웠다. 선생과 춘포의 모 식당에 가서 앉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반겨하며 개갈비를 내온다. 국물을 짜잔하게 부어온다 부산을 떠는데 불그스레한 기운이 도는 개장국물이 얼핏 봐도 진국이다. 선생은 초장과 들깨와 된장을 섞는 환상의 비율을 알려주셨고 왜 개장국을 먹을 땐 마늘을 먹어선 안 되는 지에 대한 민속학적 지식을 전수해주셨다. 선생은 개장국 한 그릇에도 자상한 이야길 곁드릴 줄 알았다. 내가 만난 적 없는 기라성 같은 문학인들의 이야길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 것도 선생의 덕택이었다. 부친이 어려웠을 때 그 속앓이를 다 받아주신 분이 또 선생이다.

 

 

반백년을 이어온 아름다운 문우

 

인터뷰를 하다가 선생의 휴대폰이 울린다. “어 웬일이야?…나 좋은 데 와 있다…응?…그래 이따 만나자…” 정양시인이란다. 두 분은 고교시절부터 지속되어 온 ‘지란지교’다. 일전에 뵌 정양시인께 오하근 선생 평을 해 달라 청하니 “내가 사람이 무던해서 이렇게 만나주지, 1년 후배에게 친구하는 사람 없지…” 했다. 이참에 그 말을 전하자 생일은 내가 빠르다며 선생은 짐짓 정색을 한다. 문득 어렸을 때 읽었던 토끼, 노루, 두꺼비의 나이자랑 동화가 생각난다. 숲속 잔치가 벌어졌는데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이 음식을 먹기로 한 이야기… 전북문단 어른들의 동화같은 우정이 후학들에게 미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등학교 연합 시화전 때 만났던 사이라니 근 오십년이 되었다. 각각 전주고와 남성고에 다니면서 문학청년을 꿈꾸었던 두 분은 다들 서울로 몰려가던 시절에 지역을 지키며 지금의 전북문단을 키워냈다. 허나, 이곳이 전국에서 알아주는 탄탄한 문학의 숲으로 자란 것이 어찌 두 분만의 공이랴. 글을 쓴다면 허물없이 대해주던 신석정시인이 있었고, 수많은 나무들이 땅 밑으로 뿌리를 엮어 한여름 땡볕아래 그늘을 드리웠기에 가능했으리라.

 

선생과 정양시인은 금연 클럽의 불량회원이기도 하다. 대학원 수업을 받으러 강의실을 찾으면 “어, 왔어~” 그러시곤 담배를 내놓으시며 불을 붙여 준다. 신석정 시인이 그랬단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유독 선생에게만 불을 붙여주시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전북문단의 큰나무. 그 뒤 대학 초년생부터 피우던 담배를 ‘끊겠다’는 다짐만 열 두 번째란다. 선생과 마주하고 있으니 문득, 사범대 2층 연구실에서 어리숙한 여우처럼 눈이 빨개지도록 ‘김소월’을 보았던 시절이 그립다.

 

현장비평을 좀체 안하는 선생의 ‘귀한 글’을 볼 수 있을 때가 아주 가끔 있는데 그건 오랜 문우인 정양 시인이 새 책을 낼 때다. 시인의 출판기념식이 가까워지면 곧 전주의 술집에서 선생을 뵐 때가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그런 정양시인이 어느 날 금연을 선언하고부터 선생도 금연에 동참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어느 술자리에서 의기투합 하셨나 본데…. 어쨌거나 수업하는 선생 앞에서 혼자 끽연할 용기가 나는 없었다. 이미 신석정 시인으로부터 이어져왔다는 ‘유서 깊은 담배강의’에 중독이 된 상태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선생님 어제 술자리에서 정양선생님이 한 대 피우시던데요?” 하고 슬쩍 일러바치는 것이다. 선생은 제자의 시커먼 속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래~에?” 반색을 하시곤 바로 “박선생 한 대 줘 봐” 하신다.

 

기침보다 가래보다 담배보다 더 / 더 어려운 그리움 하나 / 아직도 삭지 않았나보다 / 옆구리 결릴 때마다 우선 / 담배부터 피우고 싶다 (정양 ‘옆구리 결릴 때’ 부분)

 

두 분 중 누가 먼저 금연에 실패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움 같은 것에 옆구리 결려하는 동무가 있다는 것이 나는 좋다. 문학을 하면서도 선생의 나이가 되도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셔서, 서로의 상처를 기대고 문학 하나로 끝끝내 아파하며 사는 것이 진짜 건강하게 사는 거라는 걸 보여 주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햇살이 따가워질수록 선생과 내가 앉은 수목원 벤치의 나무 그늘이 짙어진다. 계절의 순환은 인생의 상징이라 했던가? 나이테가 두터워질수록 나무의 결은 아름다워질 것이다. 선생의 세대가 그러했듯이 어린 나무들을 키워내는 저 그늘 너머, 곧 장마가 올 것이다. 큰 비 지나고 나면 이제 치열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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