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사랑 중창단' 지도하는 진안 용담중 박용근 교사
교사하면 떠오르는 첫 인상을 꼽으라면 ‘차분하면서도 단정하고 다소 보수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진안 용담중 박영근 교사(40)는 일반 교사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웨이브가 들어간, 치렁치렁한 머리가 눈에 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긴팔 남방셔츠로 멋을 냈다. 웬만한 멋쟁이와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다. 외모만 튀는 게 아니다. 본연의 업무인 학생지도도 뭔가 다르다.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중창단을 이끌고 크고작은 무대에 올라 어느새 진안의 ‘유명인사’가 됐다. 박 교사의 제자사랑법을 들어본다.
박 교사가 머리를 기른 것은 불과 3년전의 일이다. 지난 2005년부터다. 이전에도 다소 튀기는 했지만 평범한 교사였다. 그러다 박 교사가 그해 용담중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용담중과 송풍초등은 한지붕을 쓰는 통합학교. 당시 송풍초등 측으로부터 ‘초등학생들의 음악수업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이렇게 중학교 교사 신분으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초등생들의 맑고 초롱한 목소리에 이끌리게 된 박 교사는 ‘아이들과 중창단을 만들어볼까’하는 욕심이 커졌다. 그해 3월 창단한 ‘소리사랑중창단’이다. 송풍초등 전교생이라야 26명. 이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거쳐 14명을 선발했다. 전교생의 절반이상이 중창단원이 된 셈이다. 이후로 몇달동안은 연습과 연습의 연속이었다.
“아침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30분씩 하루 한시간 가량을 연습에 매달렸어요. 평소에는 그리 엄하지 않은 편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칠 땐 호랑이선생님이 됐죠. 나이어린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혼냈는데, 어느새 아이들의 실력이 달라지더군요. 괄목상대라는 말을 실감했어요”
불과 3개월의 연습을 거쳐 그해 6월 무주반딧불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동요제에 출전했다. 전국에서 130개팀이 출전한 이 대회에서 소리사랑중창단은 인기상을 수상했다. 오디션경쟁률만 10대 1이 넘는 대규모학교가 아닌, 전교생의 절반가량으로 구성된 소규모 학교 중창단이 불과 3개월의 연습을 거쳐 전국대회에서 입상했다는 사실만으로 당시 적지않은 화제가 됐다. 이후로도 거침없는 상복의 연속이었다. 2년연속 전북어린이대음악제 은상 수상, 지난해 제12회 꿈나무어린이동요부르기대회 및 경기 군포에서 열린 전국수리동요제에서 잇따라 장려상을 수상했다.
소리사랑이 주로 부르는 동요는 ‘싱그러운 여름’‘노래로 세상을 아름답게’‘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세상’ 등이다. 가끔씩 트로트곡도 부르고, 그때마다 공연장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메아리친다.
지난 2월엔 로마한인회의 초청과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박 교사는 “현지에서 한차례의 정식공연 외에도 거리공연을 7차례 가졌다”면서 “아이들이 성악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줬던 그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또 유명 전자바이올리니스트인 유진박의 진안공연을 성사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진안 안천중·고에 근무할 당시였는데, ‘학교 행사에 유진박을 초대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때만 해도 유진박과는 생면부지였지만 무작정 연락을 했어요. 우여곡절끝에 교내공연이 성사됐어요. 당시 학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박 교사는 “그때의 인연을 계기로 유진박과 꾸준하게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소리사랑중창단이 지난해 유진박의 전주공연과 경기 오산공연때 특별출연하고, 지난해 6월에는 유진박의 3집앨범에도 참여하게 된 것도 유진박과의 남다른 인연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박 교사가 이처럼 학생들과의 음악적 교감을 중시하는 것은 자신이 은사에게 받은 혜택과 경험을 제자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다. 전주대 음악교육과를 졸업한 박 교사는 성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은사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는 것.
“장동초등에 다닐 때 담임이셨던 이윤희 선생님(현재 진안중앙초등 교감)과 고교시절 은사였던 이정태 선생님이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주셨어요. 한분은 합창단에 활동하며 음악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셨고, 다른 한분은 진로선택을 놓고 고민할 때 음대진학의 길을 열어주셨죠”
박 교사는 “시골학교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체험의 기회를 주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선물하는 것이 그동안의 빚을 갚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앞으로도 어디를 가든 제자들에게 음악에 대한 심미안을 뜰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사는 지난 93년 임시교사를 거쳐 순창제일고, 고창대성고, 장계중, 안천중·고 등에서 재직했다. 교직에 입문하기 전에는 결혼식장에서 춘향가중 사랑가를 앞세워 ‘스타’로 인정받았다. 어림잡아 250쌍 앞에서 축가를 불렀고, 이같은 인기를 등에 업고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교회 성가대 지휘자를 비롯해 진안 마이골여성합창단과 진안군립합창단 지휘자, 우석대 특수육과에 출강하는 등 1인다역을 마다하지 않는다.
박 교사는 “지금까지 근무했던 학교마다 합창경연대회을 마련했다”면서 “학생들에게 문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 음악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중창단에서 활동하면서 정서·행동면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되는 모습을 목격하곤 합니다. 말썽꾸러기가 정서적으로 풍부해지고 차분해지죠. 노래를 통한 공동체의식을 강조하다보니 어느새 서로에 대한 배려를 잊지않습니다”
박 교사는 “아이들이 깨끗하고 맑은 소리를 가질 수 있는 때는 초등시절에만 가능하다”면서 “지금의 맑고 깨끗하고 순순한 마음을 평생 잊지않도록 간직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언젠가는 소리사랑 단원들과 헤어지겠지만,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한 뒤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사’로 남는다면 더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이라며 “제자들이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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