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이상 불상의 제작연대는 파악하기 곤란하다. 제작양식을 통해 대략적인 추정만이 가능할 뿐이다.
특히 목조불상의 경우 일반인은 목조불상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표면에 금칠을 해 화려하게 장식하고 금칠이 벗겨지면 다시 개금(改金)하기 때문이다.
경북 안동 보광사의 목조관음보살좌상(木造觀音菩薩坐像) 역시 오랜 세월 일반에 공개됐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5월 말 문화재청과 조계종 산하 문화유산발굴조사단이 보광사를 조사하던 중 보살상을 움직이자 '정원신역화엄경소', '소전동', '인본다라니' 등의 유물이 쏟아졌다.
평범한 목조보살상으로 생각했던 곳에서 고려시대 인쇄물이 나온 것이다. 문화재청과 조계종 문화유산발굴단이 합동조사를 실시했고 한 달여 뒤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천년의 신비를 간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단은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자체가 국내 최고(最古)급 목조보살상임을 밝혀냈다.
현재 국내 최고 목조 불상으로 추정되는 것은 안동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1199년 제작 추정)이며 두번째가 1280년에 보수한 기록이 있는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이다.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안동 봉정사 보살좌상과 모든 면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양감이 강조된 이국적인 얼굴 모습, 당당한 신체와 간략화된 무릎 주름 등은 서산 개심사 아미타불좌상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손영문 문화재 전문위원은 "봉정사 보살좌상과 개심사 아미타불좌상 사이에 제작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우연한 기회에 국내에서 두번째 혹은 그보다 더 오래 됐을지도 모를 최고(最古)급 불상이 발견된 셈이다.
보광사 보살좌상에서 발견된 인쇄물 가운데 '일체여래심비밀전신사리보협인다라니경(一切如來心秘蜜全身舍利寶 <人+莢> 印陀羅尼經. 이하 보협인다라니경) 역시 직지심체요절에 이은 국내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개성 총지사본으로 밝혀졌다. 人+莢>
정확히 1천년 전인 1007년 개성 총지사에서 간행한 목판본 보협인다라니경은 고려시대 조탑경전(造塔經傳. 탑을 세울 때 탑 내부에 넣는 경전)으로 널리 쓰였다.
현재 일본 도쿄박물관이 총지사본 1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국내에는 현재 보존처리 중인 월정사 석탑 출토본과 고(故) 김완섭 소장본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완섭 소장본은 현재 행방불명이다.
또 불국사 석가탑에서 목판본이 아닌 필사본 보협인다라니경이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함께 발견된 바 있다. 이는 고려시대 들어 조탑경전이 무구정광다라니경에서 보협인다라니경으로 바뀌는 양상을 한 눈에 보여주는 사례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유물 가운데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정원신역화엄경소 권6(貞元新譯花嚴經 <流자에서 水변 대신 足> 卷六)'이다. 流자에서>
화엄경은 동진의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가 번역한 구역 화엄경 34품 60권짜리와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신역 화엄경 39품 80권짜리, 당나라 반야(般若)가 번역한 정원본 1품 40권 짜리 등 3종류가 있다.
정원신역화엄경소는 정원본 화엄경에 대한 연구 논문을 엮어 간행한 일종의 논문집(교장ㆍ敎藏)으로 편찬자는 대각국사 의천이다. 즉 화엄경소에는 의천이 화엄경을 이해한 요체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의천의 화엄경소 가운데 신역 화엄경소는 일본 도다이사(東大寺)에 보관돼 있으며 정원본소는 일본 다이도큐기념문고(大東急記念文庫)가 제10권만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는 동국대 박물관이 정원본 화엄경소의 간기(간행기록)만을 소장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조선시대 간경도감에서 번각한 복사본이다.
이번에 발견된 화엄경소는 모두 10권으로 된 정원본소 가운데 제6권의 11장 한 장 뿐이지만 의천의 교장 원본이라는 점에서 간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다이도쿄기념문고의 제10권 말미에 기록된 '수창원년을해고려국대흥왕사봉선조조(壽昌元年乙亥高麗國大興王寺奉宣雕造)'라는 문구에서 고려 헌종1년(1095) 교장도감에서 판각된 판본임을 알 수 있으며 정교한 판각과 깨끗한 인쇄상태는 고도로 발달한 고려 인쇄문화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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