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같은 불상 특징...백제 후기 불교문화 상징
땅이름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각종 정보가 포함되어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문화유적을 찾으려고 할 경우 해당 지역에 있는 땅이름이나 땅이름과 관련이 있는 전설 등을 우선적으로 살펴보기 마련이다.
정읍에서 고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서 오른편 낮은 야산 중턱쯤에 기와를 올린 자그마한 보호각이 있다. 이 보호각내에 보물 914호로 지정된 보화리 석불 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석불이 있는 곳은 부처댕이라고 불리우는 곳으로 우연한 기회에 2구의 석불이 발견되어 그 주변지역과 더불어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두 석불은 형태가 비슷하고 공통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무릎아래부분이 땅에 묻힌 상태로 발견되었다. 향좌측에 있는 불상이 그 옆에 있는 불상보다 크기가 약간 커서 원래는 삼존불이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분명하지 않으며 발굴조사에서도 그같은 흔적이나 이들 불상과 관련되는 사찰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크기가 보다 큰 불상은 광배가 깨지고 대좌의 중대아래부분이 없어졌는데 불상은 비교적 잘 남아있는 편이다. 머리는 나발이 아닌 민머리로 육계가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얼굴은 길고 풍만하며 부드러워 백제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소위 우견편단으로 겉옷의 아래로 속옷과 치마가 보인다. 옷주름들은 부드러우면서도 소박한 편으로 어깨나 손, 발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손모양은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뜨리고 왼손을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도록 한 시우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이다. 왼쪽에 있는 불상도 대좌와 광배가 대부분 없어졌으며 오른팔도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전체적으로 왼쪽에 있는 불상과 같은 형태이며 남아있는 손모양으로 미루어 시무외여원인을 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불상은 얼굴부분의 마모가 심하며 특히 두 눈이 깊게 패여진 상태이지만 입가에서 양쪽 볼에까지 미소를 짓고 있어 어린 아이와 같은 느낌이 든다. 전제적으로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 아기같은 체구, 특징있는 우견편단의 옷 차림새 등에서 백제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으며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29호)과 비슷한 시기인 7세기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본디 서로 떨어져 있던 것을 마을 주민이 옮겨서 함께 세워두었다고도 하는데 정읍지방에 파급된 백제 불교 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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