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 뒤 세상은 맑은 물로 눈을 씻어낸 것처럼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미당 서정주의 시문학관을 찾은 날이 그러했다. 시문학관은 문 닫은 학교를 그대로 활용하여 만들었다는 간단한 정보로 접하기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묻어있다. 아이들이 뛰놀았을 운동장은 잔디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오래된 학교에는 의례 있을 법한 큰 나무, 퇴색한 교문 대신 모던한 사각의 조형, 그리고 교사였던 건물도 그대로를 지키면서 새로운 시멘트 구조물이 첨가되어 있다. 이 구조물이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중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수평적인 시선을 높게 만들어 생경한 기분을 감돌게 만들었지만 한쪽에서 올라오는 담쟁이의 푸른 잎들이 그나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시인은 아마도 이곳의 자연 환경과 더불어 자신의 감성을 키워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관 내부는 기획되지 않은 연출로 전시된 시인의 자취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나마 아쉬움을 덜어준 것은 미당 시문학관을 둘러싼 마을 곳곳에 펼쳐진 국화 밭이다. 동네 어귀에서부터 지붕, 담, 벽면을 이용한 벽화 역시 미술적 개입의 효과를 그대로 보여준다. 주민들도 이 같은 문화적 행위의 결합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동네에 개입된 미술작업은 환경 미화의 1차적인 단순한 의미에 그쳐 더 이상의 의미 부여를 차단해버린다. 때문에 2차 3차 작업을 통해 진정한 의미를 부가시킬 수 있는 내용을 진전시켜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기 위해서는 창작자와 향유자, 그리고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동네 주민이 함께 가꾸어나가는 공동체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문학관은 한 작가의 유물을 보관하는 박물관적 성격에 그쳐서는 안된다. 예술성을 예술로서 소외되지 않게 끊임없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사실 이 곳 뿐만이 아니다. 우리 지역의 문화공간들은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도 제 기능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문화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한 우리의 반성이 필요한 대목은 아닐까.
/구혜경·문화전문객원기자(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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