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 405호인 익산 제석사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된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30일 오전 11시 익산 제석사지에 대한 발굴조사 개토제 개최하고 본격적인 발굴에 나서기로 했다.
익산 제석사지에 대한 이번 학술 조사는 정비복원의 목적으로 기존의 조사 성과를 기초로 하여 오는 2009년도 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사역 중심부(9,100㎡)인 목탑지-금당지-강당지에 대한 전면적인 발굴에 나서는 이번 조사는 사찰의 규모 및 존재양상, 각 유구들의 축조방법을 밝혀내고, 익산 왕궁성과 관련된 왕실사찰로서의 성격을 규명하게 된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는 ‘觀世音應驗記’상에 기록된 제석사(帝釋寺)의 존재 및 화재로 인한 소실에 대해 구체적인 확인작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록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觀世音應驗記’상의 ‘百濟武廣王遷都枳慕密地 新營精舍(백제 무광왕, 즉 무왕이 지모밀지(금마)로 천도하여 새로 정사(사찰)를 경영하였다)’라는 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의 역사적 사실성 확보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제석사지는 지난 1993년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한 시굴조사에서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확인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제석사(帝釋寺)’ 명문와·백제 당초문 암막새를 비롯한 7세기대의 기와가 다량 출토되었다.
이와함께 2003년에서 2004년에 걸쳐 기존에 왕궁리 전와요지(傳瓦窯址)로 알려져 있었던 제석사지 북동편 지역에 대한 조사에서는 7세기 전반의 연화문 수막새·불에 탄 소조불상 및 악귀상·벽체편 등이 다수 출토되어 이곳이 제석사지의 건물폐기장임을 확인시켜 준바 있다.
현재 제석사지는 사적지정면적(24,218㎡) 일대에 심초석이 노출된 목탑지와 추정 금당, 강당지를 포함하여 주변에 궁평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데 최근까지 정비를 위해 민가 이전 및 잡목 제거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觀世音應驗記’에 의하면 제석사지는 정관(貞觀) 13년(639년)에 세워져, 같은 해에 뇌우로 인해 불당(佛堂)과 낭방(廊房) 등이 모두 불탔다는 기록으로 보아 백제 제 30대 무왕(A.D. 600~641)대에 세운 왕실 사찰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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