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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의 발견] (3)군산 채만식문학관

문화욕구충족 기회제공에 야박한 공간

군산 채만식문학관 전경. ([email protected])

입추가 지난 여름이었지만 하늘과 땅과 널따란 금강은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아마도 '탁류(濁流)'의 한 가운데 서 있었을 1930년대의 군산, 미두장과 함께 정신없이 북적거렸을 째보선창의 하루하루 역시 쨍쨍하였을 터.

 

백릉을 만나러 가는 길

 

전주에서 산업도로를 타고 쭉 달려 동군산 IC에서 시내 쪽으로 가다 금강하구둑 이정표를 따라가면, 바로 코앞에 채만식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문학관은 정박한 배(船) 모양을 빼다 박았다. 예서 보면 강의 하구를 막아 둑을 내고, 도로를 낸 금강하구둑이 보이고, 강 건너에는 소설 속 '정주사'의 고향인 충청남도 서천도 보인다. 한창 번창하고 화려했을 시절에는 돈이며, 돈을 찾아 온 사람이며, 쌀이며, 쌀을 실어 나르는 배가 사방 천지에 넘쳤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저 너른 호남의 평야에서 수확한 쌀을 수탈하기 위해 개발된 군산은 아직도 곳곳에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고,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은 식민지 조선의 혼탁한 모습을 고대로 소설 속에서 그려 두었다.

 

작은 배를 닮은 문학관은 모두 2층으로 1층에는 전시실과 자료보관실이, 2층에는 영상세미나실과 휴게실이 있었다.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야외광장에는 초봉의 아버지 정주사가 넘나들던 콩나물고개의 오솔길과 호남평야에서 거두어들인 미곡을 실어 오던 기찻길 등이 조성되어 있었다. 평소 결벽하고, 자존심이 강했지만 국화꽃으로 상여를 만들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던 그를 위한 꽃밭은 아쉽게도 제 철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백릉을 만나러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들락거리는 데는 필시 무언가 중요한 까닭이 있을 법도 하다. 저 멀리서부터 문학관을 향해 사드락사드락 걸어오는 한 가족도, 우리 일행처럼, 백릉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바닷가 어느 횟집에서 팔짝팔짝 뛰는 광어 녀석으로 시장기를 싹 날려버리겠지.

 

 

흐르지 않는 물, 정박한 배에 갇힌 채만식

 

6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친절한 최여사'를 만났다. 단정한 차림의 해설사는 우리가 문학관을 둘러보는 내동 빠뜨리지 않고, 하나라도 더 일러주기 위해 열정을 다 했다.

 

6m 가량 되는 작가의 연보를 따라 전시실과 자료실을 지나면 2층을 오르는 계단이다. 그 구석진 자리에 어정쩡한 모습으로 지나는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는 집주인 채만식이 앉아있다. 작은 공간에 작가의 방이 있었고, 쇼케이스에 앉아있는 작가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생각해 보건데, 군산과 채만식과 채만식문학관을 한 데 잇는 모티브는 강하게 꿈틀대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전시구성이나 전시품의 디스플레이를 보면서 수동적인 전시와 정적인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문학관에서 전시에 도입되는 전개방식이 어떤 것이든 '이야기 전개'는 관람객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건네주고, 받을 수 있는 쌍방향구조를 가져야 한다. 보는 이는 이야기 서술구조에 따라 금강을 건너볼 수 도 있고, 채만식과 마주해 시국을 얘기해 볼 수도 있고, 미두장에서 한번쯤 투기를 해 볼 수도 있어야 살아있는 채만식문학관이 아닐까 싶다.

 

현대인의 기호와 특성에 맞게끔 영상이나 디오라마 같은 시각적인 전시툴을 이용하여 전시한다면 관람객들로 하여금 한결 재미있는 공간으로, 역동적인 공간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긴 벽면을 활용하여 채만식에 대한 연표를 설치한다든지 째보선창의 심란한 기억을 그림으로 표현하여도 좋은 공간활용이 될 것이다.

 

문화시설은 '문화적 의미가 공간적 범주와 결합된 시설물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행위가 표현되는 장소'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정신적 작용인 문화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구체화되는 영역을 의미하는 동시에 문화욕구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場)이다.

 

그런데 채만식문학관은 '문화욕구'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에는 꽤나 야박하다. 관람객들이 교육과 체험을 할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다. 탁류답사, 문학강연, 야외음악회, 백일장이나 사생대회 같은 일반적인 프로그램부터 하나씩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 작은 공간에 공무원이 네 분이나 근무한다는데, 한 명이라도 문학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할 전문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꿈을 꾸자. 10년 후, 군산출신 고은 시인의 문학관이 이곳 군산 땅 어딘가에 들어선다면 젊은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딱 10년만 준비하자. 많은 문학관이 쓸 만한 사람 하나 없어 쩔쩔 매고 있을 때, 누군가를 위한 문학관은 벌써 사람들 발길에 문턱이 닳아 조용한 날 없을 테니까.

 

 

관람객이 머무는 시간을 두 배로 늘려라

 

날씨가 무더워 앉아 보지도 못한 야외 정자, 로비 안내데스크 앞 긴 의자, 금강하구둑과 강 너머 서천군이 보이는 휴게공간이 내가 기억하는 채만식문학관의 서비스시설의 전부다. 2층 휴게공간의 의자를 밖을 향하게끔 설치하고, 철제 구조물이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통유리를 사용했다면 적어도 몇 곱절의 방문객들이 '기쁨 두 배'를 외쳤을 것이다.

 

이처럼 서비스 측면에서 채만식문학관은 아쉬워도 너무 아쉬웠다. 요새 다들 하는 포토존이나 기념품 판매, 채만식과 탁류를 활용한 캐릭터 상품개발, 야무지고 똑 소리 나는 해설사의 설명이 없어도 관람을 잘 할 수 있는 충실한 안내책자를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승산이 있어 보인다.

 

현재 채만식문학관은 군산시에서 직접운영을 한다. 지자체가 문학관 운영을 책임지는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운영 활성화에 어긋난다면 원칙이라고 볼 수 없다. 이쯤에서 문학관 운영방식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문화시설의 민간위탁(contracting out)이나 민간전문가에 의한 운영시스템을 고려해 볼 때 자치단체에서 직접운영을 하는 것보다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순수한 차원에서 민간위탁은 민간의 경영성과 문화적인 전문성, 자율성 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용한 방안이다. 때문에 위탁자는 자신의 경험과 다른 위탁기관과의 상호협력을 통해 전문성과 효율성을 증가시킬 수가 있다. 그리고 조직운영에 있어서도 관으로부터 자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문인력을 탄력적으로 채용하거나 우수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관람객들이 문학관에서 전시를 보고, 프로그램을 즐기는 시간을 두 배로 늘릴 수만 있다면 채만식문학관은 더 이상 탁류(濁流)에 휩쓸리는 배가 아니라 청류(淸流)에 떠다니는 영혼이 되리라.

 

/정 훈(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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