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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지금도 사투리, 표준어 따지는가? - 김열규

김열규(서강대 명예교수)

 서울을 떠나서 남행하는 열차 안에서 생긴 일이다.

 

 막 서울역을 나서서 남행하기 시작한 열차의 어느 칸이 시끌벅적했다. 부산과 대구 등지의, 이른바, '남도 여성'들이 많이 탄,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 여성들이 귀를 틀어막고는 견디고 있는 사이에 기치는 마침내, 동대구역에 닿았다. 대구 여성, 한 무리가 내렸다. 기차가 종착역, 부산을 향해서 출발하자, 여자들은 이젠 살았다고 귀를 막은 손을 내렸다. 한데 웬걸 별로 나아진 게 없었다. 부산 지역 여성만 남았는데도 서울 여자들, 귀는 여전히 따가웠다.

 

 견디다 못한 서울 여자 승객 한 사람이 친구들을 대표해서 부산 여자들이 모여서 앉은 쪽으로 갔다.

 

 '그 좀 조용할 수 없을까요?' 부산 여성이 대뜸 받아서 소리쳤다. '그래, 이 칸이 말칸 니 칸이다 칸은 거가?' 서울 여자는 제 친구들에게로 돌아가서는 '저기 저 여자들 다 일본 사람이야?' 이렇게 투덜대고는 한숨을 토했다.

 

 이건 남도 사람들이 들으면 여간 재마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 비해서 서울 사람들은 무순 이야기인지 전혀 못 알아듣고는 어리둥절할 게 뻔하다. 거기에는 영남말의 멋과 흥이 넘실대고 있지만 서울 사람 귀에는 외국말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울 여성 귀에 일본말로 들린 부산 여성의 발언을 서울 사람 알아듣기 쉽게 옮겨 보자. '그래, 이 (기차) 칸이 몽땅 네 칸이라고 말하는 건가?' 이쯤 될 테지만 그래 가지고는 흥겨운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은 눈곱만큼도 없을 것이다. 부산 여성의 발언은 짧은데도 '칸'이 자그마치 네 번이나 되풀이 되어있다.

 

 '칸, 칸, 칸, 칸'의 반복이 신난다. '프랜치 캉캉'의 춤사위 같다. 일행시(一行詩)가 아니면 , 무슨 경구나 속담처럼 재미있게 들린다.

 

 하지만 그걸 서울말로 옮기고 보면, 영 맨송맨송 해서, 무슨 맹꽁이 울음 같다. 재미라곤 티끌만큼도 없다.

 

 그런데도 참 딱한 말버릇이 지금도 버젓이 활개 치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니고 서울 시민가운데서도 중류의 말을 '표준어'라고 떠받들고, 서울 아닌 다른 고장의 말은 '사투리'라고 퉁을 주는 일이다.

 

 '사투리/ 표준어'의 이분법은 지금도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다. 설쳐대고 있다. 아니, 망언을 떨고 망발을 해대고 있다. '사투리/ 표준어'로 온 나라 안의 말을 양단(兩斷)한 것은 일제 치하의 저 욕된 식민지 시대의 일이다. 한데 그 본보기가 된 게 뜻밖에도 일본이다. 그 당시 이미 저들은 그들의 말을 표준어와 방언(方言)으로 양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뜻으로 다분히 치욕스러운 한국어의 양분법이 거기 꿈틀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은 없다.

 

 한데 그게 언젠데, 그게 지금도 나부댄다면 그건 분명히 시대착오다. 이제 모든 면에서 지역차별은 없어져 마땅한 이른바, '지역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중앙집권적인 지역 차별은 있을 수 없다.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어림짐작이긴 해도 '사투리'란 낱말은 '서툴다'와 사촌 간쯤 될 것 같다. 당치도 않게 각 고장의 고유한 말이 서투르고 시원찮다고 해서는 욕되게 부른 것이 다름 아닌 '사투리'란 그 고약한 낱말일 것 같다.

 

 물론 '방언(方言)'이란 낱말도 쓰레기통에 내다 버려야 한다. 방언이란 낱말을 곧이곧대로 풀면 어떻게 될까?

 

 그건 '중안 아닌, 변두리, 외딴 곳의 말'이란 뜻을 갖고 있다. '중앙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이, 그나마 중앙은 섬기고 떠받들고 지방은 깔아뭉개고 하던 아주 고약한 묵은 시대의 이분법이며 그 악습이 거기 엉겨 있다.

 

 모르긴 해도 한 나라 안의 말을 표준어와 방언 또는 사투리와 표준어로 나누고 있는 국가는 흔할 것 같지 않다.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중국에서도 그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 양분법이 통하고 있는 나라로 우리들이 알만한 나라는 아마도 일본뿐 일 것 같다.

 

 '시엄씨 몰래 술 뚱쳐 먹고 이 방 저 방 다니다가 시엄씨 궁뎅이를 밟았네'

 

 진도 며느리들의 아리랑 타령은 진도 말이라야 제대로 멋 부리고 익살을 떤다.

 

 '날 좀 보소 ,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밀양 아리랑을 뜯어 고쳐서 '날 좀 보세요' 한다면 상대가 천하의 절색이라도 바라볼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제 '사투리와 표준어'의 이분법은 그만 두자. 호남 말, 강원 말, 충청 말 , 영남 말과 나란히 서울말이 있을 뿐이다.

 

/김열규(서강대 명예교수)

 

이 칼럼은 전북일보를 비롯 한국지방신문협회 9개 신문사가 공동으로 게재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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