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시인·우석대 교수)
작가들의 글쓰기를 흔히 출산의 고통에 비유한다. 예술 작품의 탄생이 그만큼 엄혹한 진통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또한 작가들은 생의 환희나 행복보다는 고통과 결핍에 관심을 갖는다. 이 세상이 아무런 아픔 없는 태평성대라면 문학은 존재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게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렇듯 문학작품과 작가는 고통이 낳은 자식들이다. 다음 달 8일부터 14일까지 전주에서 열리는 아시아 ? 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AALF)에 참가하는 외국작가들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이들의 생의 이력은 하나하나 기구하고, 아프고, 눈물겹다. 그야말로 고통의 축제를 보는 듯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는 루이스 응코시라는 소설가가 있다. 그는 인종차별정책이 극심하던 60년대에 흑인소년과 백인소녀 간의 성관계를 묘사한 작품을 썼다는 이유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의해 편도 기차표만 받고 강제추방을 당한다. 그렇게 고국을 떠난 후 30여년을 잠비아, 보츠와나, 말라위 등지의 인근 아프리카 지역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지로 유랑한 작가다. 그는 1994년 최초의 흑인 정권인 만델라 정권이 선 이후에야 조국을 찾을 수 있었다.
1994년 벌어진 르완다 학살은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사건이다. 3개월 간 거의 일백만 명의 목숨이 스러졌다. 이 사건의 생생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여성작가 욜란드 무카가사나가 이번 행사에 참여한다. 그녀는 학살 당시 남편과 두 아이를 잃은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이다.
아프리카의 생소한 나라 기니 비사우에서 오는 작가 로우렐은 돌고 돌아 한국에 온다. 그는 자국 내에 국제공항이 없어 인접국인 세네갈까지 버스 편으로 이동을 하고 세네갈에서 다시 유럽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대장정에 돌입한다.
아시아 작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베트남의 여성 소설가 레 밍 쿠에는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유소년 자원군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이력이 있다. 그녀는 5년의 군 복무 기간을 마친 뒤 1969년에 하노이에 돌아왔지만, 전장과 떨어진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정글로 돌아가 종전될 때까지 정글에서 군부대와 함께 작전을 수행한 전사다.
소련 연합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범하던 당시 유명 시인으로 알려져 있던 파타우 나데리는 감옥에서 시를 쓰던 시인이다. 그는 끊임없는 감시와 위협, 모욕 속에서도 담뱃갑 속에 끼워진 은박종이에 시를 썼고 자신을 보러 온 아내에게 그것을 은밀히 건네주었다. 우리의 김남주 시인이 저 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이집트의 작가 소날라 이브러힘은 1959년 이집트 낫세르 대통령이 좌익분자 처벌 작전이라는 미명 아래 지식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투옥하던 시기에 7년형의 강제 노역을 언도받기도 했다. 파키스탄의 작가 파미다 리아즈는 계엄 정권하에 잡지를 발간하다가 사형을 선고받은 이력의 소유자다.
지구촌의 마지막 하나 남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이러한 작가들이 일정한 시기에 한데 모인다는 것은 매우 경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 45개국에서 80명에 가까운 작가들이 오는 것은 80여 개의 외국 언론이 한국에 오는 것과 같다. 80여 개의 찬란한 고통과 80여 개의 순결한 영혼이 한국으로 모여드는 것과 같다. 어쩌면 문학올림픽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소설가, 그리고 문학평론가 200여 명이 한꺼번에 모여 독자들과 함께 축제의 장을 펼친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한국작가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눈부시기 그지없다.
고은, 신경림, 송기숙, 최일남, 김주영, 전상국, 황석영, 한승원, 현기영, 강은교, 박범신, 김훈, 김용택, 황지우, 도종환, 성석제, 은희경, 신경숙, 윤대녕, 김인숙, 문태준, 김선우…….
고통스러운 세상에 뿌리를 둔 문학을 읽고 즐기는 것은 고통을 넘어서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모처럼 마련되는 품격 있는 축제를 이제 마음껏 즐길 일이 남았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한국의 작가가 수상하지 못했다고 아쉬워 할 일은 아니다. 11월에 열리는 아시아 ? 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은 우리 한국문학의 힘을 확인하는 축제가 될 것으로 본다.
/안도현(시인·우석대 교수)
이 칼럼은 전북일보를 비롯 한국지방신문협회 9개 신문사가 공동으로 게재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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