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한잔 드시지요'...어머니 보낸자리 수필을 들여놓았네
지난 여름, 어머니 떠난 자리에 어렵게 시집 한 권을 내놓았던 시인이 깊어가는 가을 또한권의 수필집을 묶었다. 늙은 어머니 보살피는 일에 책 한 권 묶을 여유가 없어 보이던 그가 토해내듯 내놓은 것이다.
마흔이 될 때까지 곰삭인 후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는 김용옥씨(59)의 네번째 수필집 「생각 한 잔 드시지요」(수필과비평사)다.
“흔히 글은 감성으로 쓴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나는 진실과 거짓을 가려낸 힘 곧, 생각하는 힘으로 씁니다. 글은 인간의 아름다운 포장지가 아니라 인격과 하나인 바로 작가 자신입니다. 글 잘 쓰는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내 지식만큼, 내 사유만큼, 내 분별만큼 솔직하게 씁니다.”
“문학은 슬픔과 고통을 수행한 결과물”이라고 말한 적 있는 그는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곱씹으며, 글 쓰는 일을 신중하게 한다”고 했다.
5부 41편으로 짜여진 「생각 한 잔 드시지요」. 제1부는 사랑이 이뤄내는 변화를 주목했다. 사랑이 인간을 어떻게 바꾸며, 왜 사랑을 줄수록 상처를 입는가에 대한 질문과 해답이다. 영화배우 장국영을 좋아하는 그는 2부에 ‘장국영 별곡’을 실어놓았다. 죽음의 본질에 대한 예찬이다.
3부는 개인사에서 가족사로 외연되는 변화를 그려내고 있으며, 4부는 민중적 삶에 더욱 근접한 작가의 인간관을 담고있다. 5부는 이번 수필집의 결정체. 자아를 정화하고 부모의 혼을 위로하고 민중의 아픔을 공유하려는 작가의식이 깔려있다.
“인생은 내 두뇌와 가슴 속의 형이상학적 재산으로 살찌는 게 아니라 형이하학으로 걸어가는 길이란 걸 몰랐습니다. 이 무지함으로 인생의 중허리를 꺾이고 만신창이로 찢어져야 했죠. 그 절망을 견딜 수 있게 한 자존심은 문학으로의 외출이었습니다.”
이유도 없고 까닭도 모른 채 반공법의 칼날이 집안을 강타하는 사이,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어린 청춘은 책갈피 사이로 도피했다. 질직사할 것 같은 삶에 한숨이 되어준 것이 시와 수필이라는 김씨. 이제는 나팔꽃송이가 쪼그르르 오므라드는 것도 즐겁다. 미련 없이 피었다가 집착 없이 지는 것. 한 생각이 왔다가 스러지는 걸 지켜보는 그는 “나 하나가 내게로 와서 머물다 떠나간다”며 세상에 이 책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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