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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흥사지서 쏟아진 유물로 백제연구 활기

유물 기록 '삼국사기'와 차이...역사교과서 새로 써야

"경주에서는 1천 년 전 마애불이 나왔죠, 태안에서는 고려시대 보물선이 튀어나오는데 백제는 십여년 전에 발굴한 금동대향로 말고는 내세울게 있어야죠. 이제야 기를 좀 펴게 됐습니다."

 

백제 왕흥사터에서 1천400년 전 백제 황금사리병을 발굴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김용민 소장의 말은 침체돼 있던 백제 연구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동안 국내에서 발굴된 유물은 신라의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역사의 기록마저 승자였던 신라를 중심으로 쓰이다 보니 문헌사학과 고고학 모두 사료가 풍부한 신라 연구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24일 열린 현장설명회에서 황금사리병 발견의 의의를 설명한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은 "만일 사리내.외병과 청동사리함이 도굴된 뒤 누군가 발견했다면 학계에서는 모조품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존상태가 매우 우수할 뿐만 아니라 예술적 성취도도 뛰어나 발굴된 작품들이 6세기 백제인의 손으로 탄생했을 것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동외함의 몸체에 새겨진 '정유년 2월15일 백제 창왕(丁酉年二月十五日百濟王昌)'이라는 연대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왕흥사의 창건연대와 23년 차이가 난다.

 

기존 역사자료에만 의존하는 문헌사학자들이 봤다면 "기왕 모조품을 만들었는데 문헌 검토라도 철저히 하지 그랬냐"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뻔 했다.

 

김 과장은 "고고학자들 역시 대부분은 이번 발굴 유물을 모조품으로 보거나 8-9세기 신라 작품으로 봤을 것"이라며 "그 정도로 한국 사학계는 신라, 특히 통일신라 쪽에 몰려 있어서 백제사 연구는 상대적으로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1천400년간 묻혀 있다가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백제 황금사리병은 역사교과서를 다시 써야할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국내에서 발굴된 사리병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유물인 동시에 보존상태도 거의 완벽하다는 점에서 당장 보물 이상의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구나 유일한 백제의 사리병이라는 점 역시 황금사리병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는 요소다.

 

역사적 연대마저 부실하게 정리돼 있는 백제사를 돌이켜 볼 때 위덕왕(창왕의 시호) 24년(577년)이라는 절대연대가 새겨진 명문은 백제사 연구에 있어 더 할 수 없을 정도의 소득이라는 평이다.

 

'삼국사기' 기록의 오류가 확인됐을 뿐만 아니라 10년 전에 지어진 능산리사와의 비교를 통해 6세기 백제 사찰 양식의 변화를 연구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로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독특한 사리장치 안치방식은 백제의 활발한 대외교류를 증명하고 있어 관련 연구에 활기를 줄 것으로 보인다.

 

황금사리내병과 은제사리외병, 이를 담은 청동사리함은 목탑의 심초석 아래에 놓인 석제의 사리공에서 발견됐다. 국내에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리장치를 안치한 예는 발견된 적이 없다.

 

반면 남북조시기 중국은 심초석 아래에 전실 등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사리장치를 안치했다. 이런 점에 미뤄 왕흥사지 목탑은 중국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백제의 것으로 소화해 중국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안치형태를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심초석 아래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는 대신 평평한 돌을 하나 더 깔아 사리장치를 안치했고, 심초석 아래 깔린 돌은 석제사리함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심초석이 받는 하중을 분담하도록 설계한 것 등도 독특한 점으로 꼽힌다.

 

또 꽃봉오리 모양의 청동사리함 뚜껑 꼭지는 일본 고대사찰의 난간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형태로 밝혀졌다. 청동사리함의 꼭지에도 고대 문화 교류의 단면이 묻어있는 셈이다.

 

사리장치 주위의 진단구에서 발견된 중국 북조의 화폐인 상평오수전 역시 백제의 대외 교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이밖에 8천 여 점의 구슬과 목걸이, 팔찌, 비녀, 금제귀고리, 옥류, 금제품, 금동제품, 은제품, 관모장식을 비롯해 운모로 만든 연꽃 등 왕흥사 목탑터에서 쏟아진 유물은 실물자료와 사료 부족에 시달려 온 백제 연구자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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