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실내악단 '다스름' 공연에 VIP 수십명 객석 메워
28일 저녁 7시30분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의 국립 극장. 관객 300여명의 박수 갈채와 환호성이 극장에 울려펴졌다.
잠시 후 여성 10인조 국악 실내악단 '다스름'이 연주하는 국악의 선율이 극장 밖으로 흘러나온다.
'신(新)수제천' '가야금 산조' '수룡음' '천년만세'에서 '아리랑'에 이르기까지 한국 전통음악의 구성진 가락에 벽안의 보스니아 관객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계속되는 국악 연주. 그러나 이번에는 귀에 익은 멜로디가 난생 처음 본 악기로 연주된다.
서양의 하모니카 같은 소리를 내는 생황이 '리베르탱고'의 빠른 리듬을 숨가쁘게 토해내고, '다뉴브강의 잔물결'이 국악기로 합주 되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
1992년 옛 유고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직후 1995년까지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한국 문화 공연단의 초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금까지 지방의 작은 무용단이 사라예보에서 열린 국제 페스티벌에 다른 나라 연주단과 함께 참가한 적이 있지만, 한국 공연단이 단독으로 콘서트를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보스니아는 아직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곳이다. 400만 인구가 무슬림계,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로 갈라져 갈등과 반목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세르비아계 주민으로 구성된 스르프스카 공화국은 코소보가 독립하면 연방에서 분리, 세르비아에 병합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불안한 정정에 지리적인 거리감까지 겹쳐 한국-보스니아 관계도 이렇다할 전기를 마련하지 못해왔다. 현재 보스니아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이 단 한 가족뿐인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통상부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문화문(文化門)의 찬조로 이뤄진 이번 '다스름' 공연은 양국 간 문화 교류의 싹을 틔웠다는 평가다.
이날 공연에서 선보인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보스니아의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가 내전 당시 폭격으로 희생된 22명의 죽음을 추모하며 연주했던 곡이다.
흉금을 울리는 아다지오의 선율이 대금과 소금으로 연주되자 청중들의 표정은 숙연하다못해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듯 감상에 젖는다.
공연에는 에유프 가니치 전 대통령, 안토 도마제트 전 총리, 세미하 보로바치 사라예보 시장, 그라디미르 고에르 문화부 장관, 세나드 셰비치 내무부 차관, 파루크 차크로비차 세르비아 국립대학 총장, 등 보스니아의 고위급 인사 20-30명이 줄지어 객석을 메웠다.
사라예보 국립극장에 이렇게 많은 VIP들이 한꺼번에 몰린 것도 보기 힘든 장면이라고 한다.
가니치 전 대통령은 공연을 본 뒤 "너무 아름다운 한국 악기의 선율에 반했다. 경제적인 교류 외에도 한국은 문화적으로도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호평했다.
1990년 창단 이후 17년간 다스름을 이끌어온 유은선 단장은 "다스름은 지금까지 해외 공연에서도 한국과 특별한 교분을 가지지 못했던 국가들을 주로 방문해왔다"며 "국악이 가진 고유의 특성에 많은 외국인들이 공감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 단장은 "'다스름'이 원래 '음(音)을 다스린다'는 뜻인 것 처럼, 내전으로 상처받은 보스니아인들의 마음을 음으로 달랜다는 이번 공연의 취지가 실현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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