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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그들 이름도 詩가 되다' 고은 시인, '만인보' 출간

고승들의 이야기 중심 역사·실존인물 담아

이미 불 꺼진 세계가 원로시인 고은(74)의 시로 다시 빛을 되찾는다.

 

민초의 삶과 역사에서 잊혀져 가는 인물들에 다시금 혼을 불어넣는 고은의 「만인보(萬人譜)」(창비) 24∼26권이 출간됐다.

 

1980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 착상했다는 「만인보」는 시인이 순수시와 서정시 단계를 극복한 다음에 나온 것들로, 우리 민족의 수많은 인간상을 시를 통해 형상화하려는 시도다. ‘시로 쓴 인물사전’이라고 일컬어지는 「만인보」는 세계 최초로 사람만을 노래한 연작시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3월 21∼23권을 출간하고 395편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시들을 묶어낸 24∼26권은 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불교사를 고승들의 삶과 행적을 쫓아가며 복원해 냈다. 작가의 불교적 세계관을 집대성해 나가는 과정 중 하나.

 

시인은 선사나 고승들의 삶을 경외의 대상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를 직시하고 해학과 비판적 요소를 더했다. 고승들의 인간적인 면모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사대주의와 친일승들의 행적을 꼬집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만인보」의 지난 작업에 서있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들을 통해 권력의 무상함과 역사의 아이러니를 노래하고, 문인들의 애틋한 일화나 군사정권의 잔혹성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소묘도 담았다.

 

무엇보다 이름없는 민초들의 비극적인 삶은 애잔함으로 다가온다. 동학운동을 통해 드러난 민중의 힘과 좌절, 다산의 숨겨진 부인과 딸에 대한 묘사, 6·25전쟁에 희생된 민초들은 시인이 역사의 이면에서 건져올린 것들이다.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만인보」는 70년대 중반기 경부터 고은이 익힌 민중사관의 집약형태로 제작돼온 작품들을 모은 것”이라며 “이 시집의 작품들은 통시적이며, 문자 그대로 우리 민족의 모든 인간상을 두루 포함시키려는 시도의 소산”이라고 평했다.

 

시로 이뤄내는 역사 다시쓰기. 1986년 「세계의 문학」에 연재를 시작한 시인은 등단 50년을 맞는 2008년 30권으로 「만인보」를 완간할 예정이다.

 

군산에서 태어나 18세의 나이에 출가해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던 시인은 1958년 「현대문학」에 추천돼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들은 1989년 이후 영어·독일어·프랑스어·스웨덴어를 포함한 10여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한국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도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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