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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의 발견] ⑥남원의 문화일꾼

조명현 "젊은 사람들 경제활동 할 것 없어 안타까워"

남원의 문화를 이끌어 가고 있는 젊은 문학인들이 남원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한 찻집에서 모여 지역의 문화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왼쪽부터 조세훈, 조명현, 김미연, 황의성씨. ([email protected])

남원은 큰 도시다. 산업 규모나 상주 인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지리산과 뱀사골, 판소리와 동편제, 춘향가와 흥부가·변강쇠가, 송흥록과 안숙선, 남원농악과 삼동굿놀이, 혼불과 최명희…. 남원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상징들. 도시의 인지도를 따진다면 남원만큼 친숙하고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곳도 드물기 때문이다.

 

남원이 이만한 저력을 갖춘 것은 남원이 다듬어 온 문화의 힘에서 비롯된다. 판소리로 대표되는 전통문화가 탄탄하게 그 기반을 닦아 놓았고, 문학과 미술,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이 지붕을 덮었다. 남원에서 남원의 문화를 이끌고 있는 문화인프라는 그 든든한 기둥이다.

 

지난 4일 남원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한 찻집에서 문화기획자 황의성씨(43)와 화가 조명현씨(38), 남원농악단 전수조교 조세훈씨(38), 무용가 김미연씨(29)를 만났다. 조세훈씨를 제외하곤 모두 남원에 태를 묻은 '남원산'이다.

 

 

"민간 문화활동가들은 봉사를 강요당하고 있어요. 분명 그들도 먹고살아야 할 터인데, 경제적인 부분은 고려하지 않죠. 지역 여건상 아직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래서 떠나잖아요.”

 

명현씨는 올해 한국예총 남원지부 사무국장을 맡으며 더 분주해졌다. 틈틈이 남원 곳곳의 빈집들을 찾아다니며 캔버스에 옮기고 있지만, 빈 집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이 그리워진다. 남원문화원 박찬용 사무국장 등 지역의 젊은 문화예술인 10여명과 함께 '남원문화예술연구소'를 꾸린 것도 그 때문이다.

 

"남원에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어요. 지금은 장르별로 사람들을 파악하고, 무슨 일을 할까,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남원 역시 가장 큰 고민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저는 행복한 편입니다. 남원은 젊은 사람들이 경제활동 할 곳이 없어요. 우선 1년 버틸 '꺼리'를 찾아야지요. 그러면 2년, 3년을 채워나갈 또다른 '꺼리'들도 찾아지겠지요.”

 

"남원에 젊은 기운이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거듭 말하는 그에게, 경제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 이탈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은 씁쓸하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세훈씨는 역동적이고 인간적인 남원농악에 반해 1994년 아예 남원고을에 뿌리를 내렸고, 대학원에서도 한국음악을 전공했다.

 

"남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유명철 선생의 손사위와 발사위 때문이죠. 아무튼 푹 빠졌습니다. 처음 4∼5년은 천국 같았어요. 좋아하는 선생님이 늘 곁에 계셨으니까요. 농악 하는 사람들에게 남원만큼 좋은 곳은 없다는 생각도 했구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가끔씩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전통이라고 해서 과거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전통에도 분명 역동적인 개념이 필요합니다. 전통이 제대로 살려면 고유의 기품을 유지하기도 해야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현재와 미래를 관통해 나갈 수 있는 패기가 있어야 하죠.”

 

세훈씨는 판소리에만 집중되는 남원의 문화에도 아쉬움을 피력했다. 무용과 기악, 풍물 등이 조화롭게 어울려야 서로 상승작용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남원의 문화가 미래지향적이기 위해서는 인접 장르의 문화를 아울러야 하고, 그래야만 전통문화의 메카인 남원의 매력을 훨씬 유쾌하게 품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장르의 확산과 함께 문화예술인들의 기획과 행정 능력이 가미되면 금상첨화.

 

"아니죠. 이제 문화예술인들에게 기획이나 행정 전반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남원시립국악단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는 황의성씨는 남원의 대표적인 '기획통'이다. 우석대 국악과에서 거문고를 전공한 황실장은 전주의 여러 문화예술단체에서 실무를 담당하다 10여 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민속국악진흥회, (사)강도근동편제판소리보존회, (사)악성옥보고기념사업회 등 남원의 주요 국악단체에서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직함이 사무국장이거나 이사이거나 그는 여전히 '현장인력'을 자처한다. 스스로도 "언제쯤 기획서 쓰고, 무대 오르락내리락 하는 일에서 벗어날지 모르겠다”며 웃는다.

 

황실장은 요즘 공교육을 통한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다. "교육을 통해 문화에 접근하는 안목이나 도시에 대한 자긍심을 어린 시절부터 키울 수 있고, 문화예술인들의 역량과 환경도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남원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문화는 최소한 남원에서 만이라도 초·중·고의 체계적인 공교육을 통해서 교육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특히 판소리나 농악 등은 남원 지역 학교들과 연계해서 단계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춘향무용단을 이끌며 남원국악예고와 남원시립국악단 연수반 등에서 무용을 가르치는 미연씨도 '문화예술교육이 담당할 몫'에 대한 생각은 뚜렷하다.

 

"일반인들도 무용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죠. 그 기능은 다양한 형태의 교육을 통해서 가능할 겁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교육철학은 '근성'이다.

 

"제자들이나 후배들에게 무용으로 '먹고살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근성'을 먼저 가르치죠. 사는 형편이 어려워서 무용복 한 벌도 제대로 입을 수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안쓰럽지만, 그래서 조금 더 독하게….”

 

그 자신이 무용을 하기에는 다소 작은 키였기에 무대에 서기 위해 좀 더 독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풍족하게 좋은 조건에서 가르칠 수는 없죠. 하지만 제자들을 무대에 자주 세우려고 노력해요. 저 역시 마찬가지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어요? 희망은 춤을 추는 그 무대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미연씨의 말처럼 희망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가장 가까운 곳, 내가 딛고 사는 그 땅에 있다. 그래서 남원의 문화현장을 지키는 이들에게서 남원 문화의 찬란한 미래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최기우 문화객원기자(최명희 문학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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