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공연 잘 겪어내야 음악적으로 어른 될 것 같아요"
서른을 지나면서 음악에 대한 사랑은 더 깊어졌다. 그러나 한 때 음악을 숭배한 나머지 인생의 전부로 여겼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 지를 깨달았다.
70, 80이 되어서도 성숙해져 가는 음악가들을 보며 그는 지금이 음악인생에서의 ‘사춘기’라고 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슬럼프’. 10, 20대처럼 겁없이 연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가들이 갖는 깊이도 어려웠다. 그는 “이 과도기를 잘 겪어내야 음악적으로도 어른이 될 것 같다”며 인생에서 음악과 삶을 되짚어 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피아니스트 김정원. 그는 13일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진지하게 음악을 연구해야 할 시기에 나선 ‘12개 도시 전국 투어 리사이틀’. 청중도 많고 대우도 좋은 유럽의 큰 무대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작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일정의 3분의 2쯤을 마친 지금, 그는 무엇인가 막혀있던 것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요. 무대에 서고 싶은 연주자는 많은데 찾아오는 청중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국 청중 발굴이죠.”
전국 투어는 클래식을 알리기 위한 고행.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과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직접 택했다. 마음을 주고받는 일. 무모하다고도 생각했지만, 연주마다 유럽에서는 느낄 수 없는 커다란 기쁨이 있었다.
“몸도 몸이지만, 같은 프로그램을 두 달 동안 연주하다 보면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했었어요. 하지만 연주 초반보다 무르익었다고나 할까요? 스스로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곡에 대한 애정은 더 커진 것 같아요.”
사실 전주 공연을 앞두고 살짝 몸에 무리가 왔다. 지난 며칠 병원을 오갔지만, 곡에 대한 애정은 클라이막스에 달했다. 그는 “연주회가 지루하다면 그건 전적으로 연주자 책임”이라며 “오랜 연습 보다는 곡에 대한 애정이 가장 클 때 무대에 서는 게 좋다”고 말했다.
흔히 연습은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시간만을 생각하지만, 그는 가슴과 머리, 손으로 연습한다. 가슴으로 음악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느낀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악보를 보며 더하고 보태는 작업을 한다. 손은 마지막에 이뤄지는 가장 고된 작업. 최소화하는 대신,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한다. 만약 손으로 하는 연습이 길었다면 음악을 오래 좋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연주자가 자신의 색깔을 묻히지 않고 연주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철저하게 음악 뒤에 숨어야 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게 개성이죠. 제 연주를 듣고, 이 곡이 이렇게 좋은 지 몰랐다는 말이 가장 기분 좋은 것 같아요.”
곡 칭찬이 바로 나를 칭찬하는 일이라는 젊은 피아니스트. 그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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