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한테 특별히 공부하라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본인 스스로 판단해서 할 수 있도록 유도했지요. 예를 들어서 두 아들 다 아침에 학교 가라고 깨우질 않았어요. 알람 시계 놓고 스스로 하도록 했지요. “너무 시끄러우면 식구들이 깨지? 그러니 바로 일어나서 꺼야 시끄럽지 않을 것 아니냐.” 이런 말만 해줬지요. 시간 맞춰서 밥 준비해놓고 “세수했냐. 선생님한테 늦었다고 야단맞지 않을까 ”그런 정도.
비상금을 주면서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쓰는 것이다” 라고 일러두죠. 나중에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지요. 반드시 점검은 해야 하니까. 사먹었다고 하면 “간식은 비상금이 아닌데, 어디 급히 가야 하는데 버스비가 없을 때 쓴다거나 그런 식으로 써라.” 이렇게 일러두지 야단을 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용돈도 큰놈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내 마음으로는 500원이상 넘어가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얼마 줬으면 좋겠냐” 이런 식으로 묻죠. 처음에는 어렵지만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 결정해요. 젓가락질도 교육적인 면에서 더욱 신경써서 도와주려 했어요. 부모가 교육적으로 도와줄 일이 있고, 해줄 일이 있고 그러지요.
자녀교육은 교육학 전문가인 남편(장대운 전 전북대교수)에게 전적으로 맡기다시피 했어요. 저는 아이들 건강을 챙기는 일을 맡았지요. 남편은 서울시보이스카우트 창단에 마스터1호이고 보이스카우트 지도자 강습을 받은 보이스카우트 맨이지요. 아들도 초등학교 때부터 보이스카우트 대원으로 활동했는데, 책보 매듭을 짓는데 풀기 좋도록 매듭을 하는 것이라든지, 텐트 치는 것이라든지 협동심 뿐 아니라 자립의식에 도움이 많이 돼요. 큰아들이 운동신경이 둔해서 남편이 집에 탁구대를 만들었지요.
부모가 도와줄 것과 알아서 할 것을 가려서 중학교 때는 아이가 스스로 하는 것을 장려해주고, 최대한 본인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키우려 했어요. 지적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적극 도와줘야 하지만.
요즘 아이를 너무 피동적으로, 기계로 키우지 않나 싶어요. 진정한 독립심을 길러줘야지요. 요즘 보면, 부모가 인생을 반절도 같이 못 사는데, 마치 일생을 같이 살아줄 것처럼 그러지 않나요?
손영실 씨는 1938년생으로 전주YWCA 원로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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