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것 가르치며 인생 배워요"
노령산맥 동쪽 사면의 산간지역인 임실군은 예로부터 충신과 효열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주에서 불과 29㎞ 거리에 있기도 하지만 운암저수지라 불리기도 하는 옥정호(玉井湖)와 소충제, 사선제, 의견제 등의 이름 난 향토축제가 매력적인 곳이다.
하지만 문화환경은 '글쎄'다. 지난해 임실문화에술교육센터에서 조사한 「임실지역 문화인프라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의 수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기반시설 역시 매우 빈약한 수준이었다. 임실의 문화예술단체는 딱 4개란다. 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곧 문화예술인의 현황은 그 지역의 문화적인 환경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양이 질을 말한다고 생각하면 오산. 여기 임실에서 일하다가 당장 오늘 '죽어도 좋을' 문화일꾼들이 있다. 필봉농악전수관에서 농악의 매력에 푹 빠져 사는 최호인 기획실장(39)과 김소희(26), 김세미씨(21), 그리고 오궁미술촌 이길명(39) 조각가를 만났다.
필봉농악보존회 사람들
호남 좌도농악을 대표하는 임실 필봉농악. 강진면 필봉리에서 보존해 온 이 농악은 지난 1988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11-마호로 지정된 최고의 문화유산이며, 지금은 임실을 널리 알리는 문화브랜드로 자리를 꽉 잡았다. 애초 농사일을 할 때나 명절 때 흥을 돋우기 우해 행해지는 향토음악이 바로 농악(農樂)이다. 필봉(筆峯)은 마을 뒷산이 마치 붓끝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필봉농악보존회(회장 양진성)는 필봉농악전수관 운영을 중심으로 임실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와 필봉전통문화체험학교 운영 등 필봉굿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에 전념하고 있다.
"처음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여기 왔었는데, 생활을 하다보니 '풍물인'의 삶에 푹 빠져 들었어요. 대학풍물패 활동을 하면서 필봉굿을 전수받으러 왔다가 고 양순용 선생님으로부터 지워지지 않는 감동을 받았거든요.”
지난 95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아예 필봉마을로 들어 왔다는 필봉농악전수관 최호인 기획실장. 전수관의 실질적 사령탑인 그는 경남 창녕출신으로 경희대를 졸업한 인재다. 이런 그가 필봉에 뼈를 묻고자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꽹과리, 장구 가락도 좋지만 풍물에는 인생이 담겨 있어 이들 가락에 맞춰 푸지게 살고 싶어요.” 그렇다. 풍물을 하는 사람들은 풍물에 응축되어 있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전수교육, 학교문화예술교육, 초중고전통문화체험교육, 풍물굿축제. 보존회가 하는 일은 참 많다. 이런 일의 중심에는 항상 최실장이 있었다. 특히 대학생들의 방학기간은 '시즌'인데, 전국각지에서 필봉굿을 전수받기 우해 모여드는 학생들로 발 딛을 틈이 업다. "이번 겨울만 해도 벌써 두 달 동안 1천 명이나 다녀갔어요. 전수생들이 여기 와서 우리문화와 가락에 푹 빠져 1주일이라는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배워가기를 바라죠.”
필봉에는 필봉을 더욱 빛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남원출신으로 대학에서 소리를 전공한 김소희씨. 소리꾼이지만 소리공부를 잠시 뒤로 하고서 임실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를 책임지고 있다. 군산출신으로 대학입학 합격증을 반납하고 부모님과 '치열한 싸움' 끝에 어렵사리 필봉에 입성한 김세미씨. 이들이 바로 그 숨은 주역.
비록 경력과 나이는 어리지만 일에 대한 각오만큼은 베테랑급이다. "제가 소리꾼일 때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은 추임새정도지만 풍물 속에서 살아보니까 사람들과 부대끼 매력이 있어요. 필봉농악도 잘 보존하면서 이것을 활용한 문화예술교육에 매진하는 이 시간이 또 하나의 인생을 배우는 시간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 할래요.”
하지만 소리꾼으로서 소리공부를 소홀히 한다는 느낌은 쉽게 지워지지 않나 보다. 그래서 소희씨는 요즘 아이들과 성인들이 소리를 쉽고, 친근하게 배울 수 있는 전략을 구상중이란다. 지난해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 실무를 담당했던 그는 전수관에서 진행되는 전수프로그램에 민요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팔방미인이다.
"저는 대학입학시험에 합격했는데, 같은 시기에 필봉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열심히 싸운 끝에 필봉행 티켓을 손에 쥘 수 있었어요.” 21살 세미씨는 필봉식구들 중 막내다. 평소 말수가 적은 편인 그녀가 체험학교에서 천연염색 강사란다. 하지만 딱히 나이가 인생의 연륜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가보다.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일이 부담스럽지만 어렵게 선택한 일이니만큼 기획과 운영에 관한 일을 잘 배워서 우리지역 문화예술보급에 보탬이 돼야죠.”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군의 재정이 여유롭지 못 한 탓일까? 1년에 3천만 원을 지원받고 있는데, 이 지원금은 몇 년 전 군에서 지어 준 건물대한 운영비란다. 최근 들어 문화관광부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진행하는 공모사업에 선정이 돼 약간의 여유가 생겨 천만다행이지만 보존회는 "이것을 바탕으로 전수생과 지역주민들에게 더 많은 문화적 혜택을 줄 계획”이다.
전통문화의 보급과 확대에 종사하는 이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뭔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어 가야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부담스런 모양이다. 이구동성으로 "그냥 바람이 불어 보릿대가 흔들리는 것처럼 자연스런 몸짓으로 동화되는 보릿대춤”처럼 살고 싶단다.
두 팔을 쫙 벌린 필봉산이 품고 있는 것은 농악도 아니요 마을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바라는 '푸진 굿, 푸진 삶'이 아닐까?
/정훈 문화전문객원기자(학예연구사, 전주역사박물관 교육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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