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내놓은 표현이다. 새 정부의 성격을 함축하고 있는 ‘비지니스 프렌들리 - 친기업정부론’은 여러 방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말은 ‘친기업’이지만, 그 혜택은 고스란히 몇몇 재벌대기업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인수위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출총제 폐지’ ‘금산분리원칙 완화’ ‘지주회사 규제완화’ 등은 잘 알려진 것처럼 몇몇 재벌의 오래된 숙원사업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92%는 출총제 폐지에 아예 반대한다고 하니 사실 이런 제도개선은 중소기업들과는 그다지 큰 이해관계가 없다. 중소기업에 계열사 출자문제나 지주회사 규정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이며, 금산분리 완화라는 것도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몇몇 재벌기업의 이야기이지 중소기업이 은행 같은 금융기관을 사들일 엄두나 낼 일인가? 따지고 보면 새 정부는 재벌의 오래된 민원에 대해서는 일종의 ‘현찰’을 내밀고 있지만, 전체 고용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민원은 언제 현실화될지 모르는 ‘어음’으로 돌려막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핵심적으로 내놓은 정책이 중소기업지원펀드 조성이다. 20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은행 매각대금으로 중소기업지원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것이 5-7년 후, 즉 차기 정권에서나 현실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보다 더 시급하고 절실한 것이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불공정거래와 횡포를 차단하는 일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당선인이나 인수위의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돈이 될 만한 사업이면 대기업이 밀고 들어와 중소기업 문닫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하도급 과정에서 ‘일방적 계약해지’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훔쳐가기’ 등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는 이만저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를 해결할 대안은 많이 나와 있다. ‘정부차원의 중소기업 법률지원, 대행’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납품가 원자재 원가연동제’ 등이 그것이다. 재벌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대형유통업체에 대한 입점제한 등 적절한 규제 역시 재래시장상인이나, 영세상인들의 숙원사업이다. 이외에도 중소기업을 지원업무를 전담하는 힘있는 ‘중소기업부’를 신설하자는 제안이나 하도급 불공정거래 조사와 시정을 담당하는 공정거래위를 획기적으로 강화하자는 제안도 매우 시급한 과제라 하겠다. 그러나 인수위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눈 여겨 보는 것 같지 않다.
재벌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대형유통업체보다는 영세상인들이 경제활동에 있어 더 많은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런 경제주체들이 살아나는 것이야말로 한국경제가 사는 길임은 자명하다. 만약 이명박 당선인이 강조하는 ‘친기업정부론’이 ‘친재벌’ ‘친수도권’ ‘친대형유통업체’로 한정된 것이라면, 그에 따라 다수의 경제주체들이 새정부 경제정책의 고려대상에서 소외된다면, 결과적으로 이명박 당선인이 이루고자 하는 ‘경제활성화’도 ‘사회통합’도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새정부는 스스로의 힘으로 얼마든지 경제환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몇몇 재벌대기업이 아니라 다수의 경제주체들이 나래를 펼 수 있는 경제정책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사족이지만, 일전에 재벌총수들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는 당선인의 파격적인 제안은 재고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한국경제를 쥐락펴락 하는 재벌들이 실제 투자와 경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백번 양보해서 그런 어려움이 있다한들 대통령과 직접 전화통화를 하지 않아도 관계부처의 공무원들이 다 알아서 잘 챙기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당선인의 의지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지만, 수시로 이뤄지는 대통령과 재벌총수의 전화통화는 ‘경제살리기’라는 명분 아래 이뤄지는 새로운 유착이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재벌이 최고권력자에게 막대한 뇌물을 주고 특혜를 구하는 시대, 즉 정경유착의 시대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 아닌가.
△김민영 처장(41)은 2004년 총선시민연대 공동사무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수도권과밀반대전국연대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민영(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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