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지키며 효율성 높일 운영책 머리 맞대야
전북일보 문화전문기자들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들'을 진단한다.
문화의 시대. 오늘도 문화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진다.
특히 문화에서 발전 전략을 찾고 있는 전라북도의 경우 문화관련 정책들이 제대로 된 점검과정 없이 채택되거나 사장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 빚어지는 문제점들 또한 크다.
이에 문화현장 곳곳에서 뛰고 있는 문화전문기자들이 지역 문화이슈들에 접근해 나가기로 했다. 문화인력 부터 문화예산, 문화법제까지, 날카로운 비판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문화현장에서 떠오르는 현안들을 공론화시킬 계획.
'이슈 뒤집어보기'의 꼼꼼한 현장분석과 다양한 사례 조사로 지역 문화가 올바르게 성장하고 자리잡아 가길 기대해 본다.
전주시 문화시설 민간위탁의 현황과 과제
말 많고 탈 많은 전통술박물관 민간위탁수탁자 모집공고가 다시 떴다. 작년 10월 말 전주시 전통문화진흥과는 전주전통문화센터, 전주공예품전시관 등 9개 시설에 대한 민간위탁수탁자 모집공고를 낸 바 있다. 8개 시설은 우선협상대상자를 결정했지만 전통술박물관은 유찰되었다.
문제는 이전까지 통합위탁방식이었던 전주한옥생활체험관과 전통술박물관을 개별위탁방식으로 전환시킨 것으로부터 불거졌다.
그동안 두 시설을 통합 운영했던 (사)전통문화사랑모임은 두 시설에 각각 수탁신청을 했다. 그런데 심사과정에서 한 단체에게 두 시설을 위탁할 수 없다는 원칙을 내세워 전통술박물관을 유찰시킨 것이다. 과정의 진위여부는 차치하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최소한, 개별위탁에 대한 세부규정을 명문화하지 않고 모호하게 대응했던 전주시의 책임이 전적으로 크다.
술박물관 수탁자 못찾아 2개월째 파행
현재 전주전통술박물관은 2개월 동안 예정된 강좌사업이나 연계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외적인 공신력이 추락하고 수년간 쌓아왔던 인적 네트워크도 붕괴될 위험이 있을 정도로 이번 파행운영의 피해가 심각하다. 더 큰 문제점은 이러한 파행과정을 통해서 행정과 민간 사이의 신뢰가 금이 가고 불만은 계속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위탁이 기본적으로 행정과 민간의 긴밀한 협조체제에 의해서 운영되는 '민관협치(民官協治, New-governance)'의 한 형태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런 증후는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이제는 민간위탁의 현황과 문제점을 깊이 있게 짚어보고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1980년 이후 자본주의 국가 적극 도입
민간위탁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 의해 수행해온 행정서비스를 민간에게 이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비스 공급에 대한 최종적 책임은 정부가 계속 지면서도 서비스의 공급주체는 정부가 아닌 개인이나 단체, 혹은 기업 등 민간부문에게 넘기는 것을 뜻한다. 서비스의 공급을 민간에게 이전하여 이들의 경쟁성과 효율성, 전문성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민영화의 한 방식이지만, 행정사무를 완전히 민간에게 이양하지 않고 행정기관이 관리책임의 권한을 여전히 쥐고 있다는 점에서는 민영화와 구별된다. 1970년 후반부터 등장한 '작은 정부론'에 기반을 둔 민간위탁 방식은 1980년 이후부터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1999년 미국의 어느 시정부의 경우는 그들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27%나 민간에 위탁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장경쟁 속 공공성과 효율성의 충돌
한국은 1997년 IMF구제금융시대 이후부터 행정인력의 감축과 행정서비스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현재 많은 지방정부에서는 민간위탁의 범위를 쓰레기 수거, 상하수도 처리, 체육 및 청소년 시설관리, 사회복지 및 문화시설 운영 등으로 넓혀 시행하고 있다. 전주시도 마찬가지다. 2008년 현재 전주시는 전통문화센터, 공예품전시관, 한옥생활체험관 등 총 11개의 문화시설에 21억 15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여 위탁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간위탁의 효과는 정말 클까.
민간위탁에 대한 연구는 주로 행정학에서 해왔는데, 많은 논문에서 민간위탁의 비용절감에 대한 경험적 증거를 제시하며 민간위탁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쓰레기수거나 상하수도사업같이 결과에 대해 측정이 가능한 경성서비스(hard service) 제공시설보다 특히 청소년시설 문화시설과 같이 효과를 명확하게 측정할 수 없는 연성서비스(soft service) 제공시설이 더욱 효율성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점은 민간위탁이 기본적으로 시장경쟁을 통해서 업무(이윤)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행정서비스가 근본적으로 공공성을 띄고 있음을 감안하면, 민간위탁은 공공성과 효율성(수익성)이라고 하는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 가치를 해결해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행정이 민간 통제" 수탁단체 불만
지금 전주에서 드러나는 민간위탁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사실 이런 모순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해관계자들을 취재해보니 전주시에서는 위탁시설이 사유화되어 공공성을 훼손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며 수탁단체는 수탁심사과정을 통해 행정이 민간을 통제하려고 한다고 느끼고 있다.
이와 관련되어 민간위탁에 대한 몇몇 연구는 전주의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민간위탁이 시행되던 초기의 연구가 대부분 민간위탁의 긍정성만 부각시켰던 반면에 최근의 연구들은 부정적인 면도 지적하고 있다.
시민 비용부담 증가등 부각
첫 번째가 최저가입찰에 의해서 시민의 비용부담이 증가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행정서비스에 대한 시민의 불만족을 정부가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위탁단체에게 전가시킨다는 점이다. 효율성을 강조하면 필연적으로 문화시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은 해당시설을 운영하는 위탁단체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관료가 부하나 업무를 늘리듯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탁계약자나 민간위탁계약 건수를 늘려서 자신의 업무량을 많아보이도록 한다는 점이다. 관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자리를 위해 필요도 없이 새로운 업무를 만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파킨슨(Parkinson)법칙'에 근거한 분석이다. 작년 단체장이 바뀌면서부터 시의 보조를 받는 많은 시설종사자가 시청에서 마치 직속 부하처럼 자신들을 대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분석이 일정하게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전문 직렬 도입? 시 직영?
현재 위탁시설의 저가서비스는 시설종사자들의 고노동 저임금의 희생에 의해서 제공되는 것이다.
작년 전북대고고문화인류학과 BK사업단에서 발표한 '전주시 문화예술시설 노동실태조사'의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시설종사자의 대부분이 전국 노동자의 평균임금의 반절도 받지 못하면서 기간제 혹은 계약제 고용형태로 인해 고용의 안정성마저 보장되지 않는다.
전주시 대부분의 문화시설이 3년마다 위탁자가 바뀔 수 있는 자유경쟁 민간위탁 형식이고, 고용승계를 강제하지 않는 위탁계약서는 이러한 현실의 제도적 근거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방법은 문화전문 직렬을 도입하여 시에서 직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공공성은 유지될지 모르지만 관료제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현재의 시설을 통합운영 하여 공공성을 유지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간단하지 않다. 과연 어느 곳에 통합운영을 맡길 것인가 결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초자치단체에서 설립한 문화재단은 시설관리가 주요 업무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반해 전주문화재단은 애초에 시설관리업무에서 제외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문화적 의제를 창출해내지도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통합운영주체의 자율성을 어떤 형식으로 보장할 것이며 각 단체의 이해를 수렴할 수 있는 민주적 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멀고 지난한 과정을 건너야 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수많은 자리가 필요하다는 점이고, 기존에 행정에서 해왔던 것처럼 자신들이 의도한 결과를 단순한 용역형태로 도출하려고 해서는 더 큰 문제점만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이경진 문화전문객원기자(문화연구 창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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