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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의 발견] ②소통의 매개자, 큐레이터

기획전시 중심 미술관 늘어나며 역할 확대

지난해 6월 전주교동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식탁전-세시절식' 전시회를 찾은 시민들이 상차림을 구경하고 있다.(왼) '다원예술공간 모리에서다'(오른쪽 상) 지난해 9월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린 석정 문학제 전시회를 찾은 시민들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오른쪽 하) ([email protected])

「어떤 그림을 좋아하세요?」(박파랑 지음, 아트북스 펴냄)라는 제목으로 몇 년 전에 발간된 책이 있다. 제목을 보면 당연히 그림에 대한 지식을 전달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했지만 그 밑에 '어느 불량 큐레이터의 고백'이라는 글자가 색다르게 다가와 시선을 끌어당겼던 기억이 난다. '미술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큐레이터가 무슨 고백을 했을까'라는 궁금증에 정신없이 살펴보니 큐레이터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솔직한 심정을 가감없이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어서 한국 미술계의 현실을 다시금 인식하게 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큐레이터에 대한 이미지가 고급스럽고 화려한 미술관에서 예술품들과 함께 손님을 맞이하는 우아한 모습으로 인식되어 선호하는 직종으로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 책은 마치 찬물을 끼얹는 격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불량하다고 말하는 솔직한 모습 속에서 대중들은 거품을 빼고 바라보는 진실을 알았을 것이다.

 

이러한 큐레이터에 대한 이미지는 최근에 불미스러운 일과 얽히면서 세상의 이슈거리가 되어 한 번 더 변화를 겪게 된다. 그래서 10년 전에만 해도 대중들은 큐레이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쏟아내며 관심을 가져왔지만 이제는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마저도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사용하길 껄끄럽게 생각한다. 이것은 미술계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반영하는 우리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큐레이터가 무엇인지 근원을 살펴보자. 서양에서 황제나 사제의 개인적인 수집품, 노획물, 약탈한 물건들을 지키는 '키퍼'(Keeper)의 개념에서 시작하여 이 물건들을 연구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하면서 큐레이터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말로 하면 학예연구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미술관의 학술 및 조사연구를 맡는 전문 인력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좀 왜곡되어 미술관 뿐 만 아니라 화랑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모두를 통칭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개념적 성격으로 볼 때 미술관이 아닌 화랑에서 업무 전반을 맡아보는 사람은 '갤러리스트'라고 구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미술계는 소장품 없는 기획전시 중심의 미술관들과 대안공간들이 많아지면서 기획분야가 강조된 큐레이터들의 역할이 확대되어 '독립 큐레이터'까지 등장하게 되고 그들의 활동 영역도 꽤 넓게 확장되어 있다.

 

전북은 2004년도에 전북도립미술관이 개관하면서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학예연구원이 처음 도입되어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미술관은 시설을 갖추고 전문 인력을 채용하여 전북미술사를 연구하고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는 등 미술관 본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미술관들이 이제는 운영 인력을 세분화하여 교육 전문가, 자료 전문가, 작품 보존 전문가, 전시 디자이너 등 세밀하게 구분하여 협업체계를 통해 운영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전북도립미술관은 아직 예산부족, 전문 인력 부재 등 여러 요소로 인해 큐레이터가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전북미술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사설화랑과 위탁 운영하는 시설들은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인력을 통해 기획전과 대관전 등 업무 전반을 맡아보며 전북 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전시시설들이 특성을 가지고 개·폐관을 하고 있지만 전문 인력에 대한 부재 현상은 여전하여 시설 대표가 직접 운영하거나 사무를 맡아보는 직원이 큐레이터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대중들과 긴밀한 소통을 하려는 프로젝트들이 전북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독립큐레이터들의 활동도 두드러지고 있는데, 전북에서는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라기보다는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과 병행하며 기획하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대중들의 기호에 부합하는 전시활동에만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미술관, 화랑, 프로젝트 등을 통해 전북에서 활동하는 인력들이 큐레이터로 통칭되면서 공간의 규모와 활동상의 차이가 있으면서도 한 부류로 묶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는 전북의 경우만이 아니라 대도시의 일부 미술관이 세분화된 인력을 운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타 지역의 상황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큐레이터는 역사와 사회를 보는 눈을 가지고 미술사적인 지식과 미학적인 입장을 근거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전문가로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열악한 환경으로 큐레이터 한 사람에게 만능을 요구하고 있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은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업무가 세분화된 전문 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제는 전북의 미술화단도 큐레이터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만능인이 아닌 전문인으로서 성장시켜야한다. 시대에 부응하는 미술 현장의 새롭고 열정적인 현상들을 종합하여 이를 분석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이제 전문성을 가진 큐레이터의 몫이다. 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미술계의 밝은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혜경(문화전문객원기자,독립큐레이터)

 

구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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