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유물 중에 국보 123호(익산 왕궁리오층석탑 내 발견 유물) 사리기는 웬만해서는 안 만지려고 하죠. 컨디션이 안좋은 날도 피해요. 한 번 실수하면 큰 일이니까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유물을 위해서입니다."
국립전주박물관 지하에 가면 '보존과학실'이 있다. 수술용 메스와 문화재 전용 엑스레이 촬영기, 정밀한 현미경 등 CSI과학수사대를 능가할 듯한 고가의 장비들이 설치돼 있는 이 곳은 박물관에 들어오는 유물들을 보존처리하는 곳이다. 2002년부터 재직해 온 이영범 보존처리사는 "'관리'가 사람들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듯 번호를 매기고 출토장소와 재질, 치수 등 상세정보를 정리해 유물을 분류하고 등록화하는 작업이라면, '보존처리'는 인류가 남긴 문화유산을 과학적으로 조사·연구해 원래의 모습을 찾고 더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적정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북에는 재단법인 전북문화재연구원과 호남문화재연구원, 대학 박물관인 전북대 군산대 전주대 박물관 등 발굴기관들이 있지만 보존처리 시설을 가지고 있는 곳은 없다. 때문에 전북지역 유물 대부분은 전주박물관의 보존과학실을 거치게 된다. 이 보존처리사는 "보기에는 재미있을 것 같지만 막일과 다름없다"며 "보존처리 과정에서 먼지나 유리가루가 많이 날리고 강한 약품을 많이 쓰기 때문에 방진복이나 방진마스크는 필수"라고 말했다. 하루종일 꼼짝 않고 유물만 쳐다보고 있다보면 몸도 고되다.
유물의 보존처리에도 순서가 있다. 유물이 박물관에 오면 일단 수장고에 보관되는데 금속유물, 그 중에서도 철기가 우선 처리 대상이 된다. 철기의 경우 에너지가 높아 외부 반응을 쉽게 받아들여 부식, 가루가 돼버릴 위험이 높다. 백제문화권인 전북은 영남지방과 매장풍습이 달라 금속유물이 많이 발굴되지는 않지만, 대신 지류(紙類)가 많다. 지류의 경우 단순히 배접한다거나 오염을 빼는 일은 문화재 표구 수리공에게 맡기지만, 안료와 밀접하게 관련된 회화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 보존실에 의뢰한다.
바다에서 나오는 유물들도 소금기때문에 응급처치를 서둘러야 한다. 물에 녹아있던 소금이 고체화되면서 틈이 벌어지고 갈라지기 때문이다. 염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열기를 가하면서 수돗물로 수차례 헹궈준다.
복합재질로 이뤄진 유물은 보존처리하기가 훨씬 까다롭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말안장 꾸미개 복원품은 비단벌레 날개를 비롯해 복합재료로 만들어졌는데, 마땅한 보존처리방법을 찾지 못하고 글리세린 용액에 보존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 보존처리사는 "유물에서 학술적 가치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보존하는 것이 우선시된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흙이나 부식층으로 쌓여있는 유물은 엑스레이를 통해 원형을 먼저 확인하고 제거작업에 들어간다. 훼손이 우려될 경우는 제거작업을 하다가도 완전노출을 포기하며, 접합시켜야 할 상황에서는 가역성(可逆性) 있는 접착제를 사용한다.
대학에 문화재보존학과가 만들어진 것은 90년대 중반 부터. 경주 천마총이나 공주 무령왕릉 등과 같이 대형고분 발굴이 이뤄지고 개발을 위한 문화재 지표조사가 많아지면서 보존처리에 있어 전문성과 수요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용인대, 한서대, 공주대, 경주대, 한국전통문화학교 등에 관련학과가 설치돼 있으며, 호남권에서는 예원예술대학교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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