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본보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우리나라가 한때 '넛크래커(nut-cracker) 딜레마'로 표현된 적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품질과 기술이 뒤처지고, 중국이나 동남아 등 개도국에 비해선 가격경쟁에서 밀리는 샌드위치 상황을 빗댄 말이다.
넛크래커는 원래 호두를 양쪽으로 눌러까는 도구인데, 미국의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부즈앨런&해밀턴사가 IMF 외환위기 직후 우리의 위기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교훈도 얻었다. 잘 나가는 선진국의 산업을 벤치마킹하면서 한국만이 내세울 수 있는 독보적 영역을 확보치 못했다는 반성이 있었고, 지식집약적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결론도 얻었다. 그 결과 우리는 정보기술 IT부문에서 세계에 자랑할만한 경쟁력을 갖게 된다.
대선과 총선이 끝난 전북의 상황은 10년전의 넛크래커 딜레마를 연상시킨다. 지역발전 여건에서 밀리고 이를 견인할 정치적 환경마저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미 예견된 것처럼 새 정부 들어 변화가 몰아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수도권 규제 완화다. 지난 십수년 동안 마치 월드컵축구경기의 수문장처럼 버텨냈던 수도권 규제정책이 새정부 들어 힘 한번 쓰지 못하고 허물어지고 있다.
수도권 규제가 풀리면 사회간접 인프라가 엷은 전북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것이다. 어느 기업이 수도권을 놔두고 전북에 내려와 둥지를 틀겠는가. 이미 뿌리내린 기업마저 수도권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생산· 유통· 판매 여러 분야에서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인구유출도 불보듯 뻔하다.
경기도의 동북아 해양관광레저 중심 개발 및 카지노 유치 구상은 새만금을 배경으로 한 전북의 그것과 똑같다. 앞으로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고, 인프라와 정치력이 관건이 될 것이다. 이명박대통령의 강력한 주문을 떨치지 못해 출마했던 강현욱 전 지사의 낙선 역시 새만금에 어떤 역학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되고 있다.
정치적 환경은 또 어떤가. 대선 경선 때 전북을 방문한 이명박후보와 김완주지사간의 가시돋힌 설전, 그후 김지사의 면담요청에 대한 한나라당의 거절, 김완주지사가 전주시장 시절 시장군수협의회회장을 맡았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의 대립 등도 긍정적인 역학 관계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총선 이후 형성된 도내 정치적인 지형도 단순치 않다. 무소속 당선자와 정당간, 당선자와 자치단체장 간의 갈등과 어정쩡한 관계는 지역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런 상황은 넛크래커 딜레마처럼 전북의 위기일 수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환위기 당시 처럼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인프라와 사회자본을 확충하고 정치력을 키우는 일이 그것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정치력의 복원이다.
그러기 위해선 전북도는 변칙 운용하고 있는 정무기능을 원상회복시키고, 김완주 지사는 변혁적 리더십과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 조그마한 지역에서 편가르기나 주도권 다툼 만큼은 제발 하지 말자.
자치단체장과 총선 당선자들이 1박2일의 워크숍 같은 미팅을 통해 전북의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것도 정공법이다. 혁띠 풀고 지역발전을 위한 진단과 처방을 모색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환영받을 일이다.
/이경재(본보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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