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본보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아파트 단지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5만원이 든 돈봉투를 주면서 구독권유를 하시더라구요. 깜짝 놀랐는데 뭐하는 분입니까?"(네티즌 A씨)
"모 신문 보라고 상품권을 주던데요. 우리동네도 그런 사람 많습니다. "(네티즌 B씨)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신문고시'라는 게 있다. 신문사 입사시험이나 '언론고시'를 뜻하는 게 아니다. 신문시장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일컫는 말이다. 공정거래법에 근거해 지난 2001년 제정된 규율이다.
예컨대 신문대금의 20%를 초과해 경품이나 무가지를 제공하거나, 7일 이상 신문을 강제투입하는 행위 등은 모두 신문고시의 제재를 받도록 돼 있다. 따라서 중앙의 일부 신문들이 자본력을 무기로 엄청난 경품을 주면서 타사 독자를 빼앗아 가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그런데 최근엔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신문고시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혼탁한 신문시장의 불법행위를 단속해야 할 공정거래위가 불법을 방임하겠다고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그동안 신문고시를 흔들어 댄 거대 부자신문들과 코드를 맞출 필요성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민언련, 언론노조, 중앙의 마이너신문과 지방신문들은 "시장질서 파괴하는 불법경품을 절대 허용해선 안된다" 며 지금 신문고시 개정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독자들은 경품의 단맛 때문에 이런 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신문고시는 몇가지 우려할 만한 이유 때문에 오히려 강화해야 할 규율이다.
우선 신문고시가 폐지되면 광란의 판촉경쟁이 재현될 것이다. 신문 판매시장의 과당경쟁은 95년 4월15일 중앙일보가 조간으로 전환하면서 불 붙었다. 구독강요와 무가지 살포, 자전거· 정수기· 비데· 디비디(DVD) 등 경품경쟁이 치열했다. 96년에는 조선- 중앙일보 지국간 싸움이 살인까지 불러온 전례도 있다. 이젠 현금까지 동원되는 판이니 물량폭격의 폐해는 극에 이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론 시장의 왜곡이다. 정보와 여론이 자본과 물량공세를 앞세운 몇몇 언론에 독식되고 가공된다면 그 가치와 지향점도 특정 언론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 광우병 파동, 남북-대미관계 등이 모두 그런 대상이다. 그 특정 언론이 권력화되고 정파적이라면 어떤 여론을 생산해 낼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또 하나는 그나마 열악한 지방신문의 피해가 크고, 지역의 여론이 소외당할 개연성이 크다는 점이다. 중앙의 신문은 대부분 중앙의 시각에서 기사를 다루고, 양적인 측면에서도 지방소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소홀하다. 이런 실정에서 중앙의 신문들이 물량공세를 퍼붓고 지방신문 시장까지 장악한다면 지역주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중앙의 논리에 함몰되고 말 것이다. 수도권 규제 문제나 혁신-기업도시, 지방분권을 비롯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런 영향을 받게 된다.
우선 먹기로는 곶감이 달듯 독자들이 경품을 좇아 구독을 결정한다면 혜택을 받는 것 같지만, 종국에는 중앙의 논리에 함몰되고 만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경재(본보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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