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본보·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
서울의 청계천 복원은 환경이라는 명제를 떠나 그 자체로 하나의 감동이었다. 콩크리트 구조물속에 갇혀 각종 오물을 뒤집어 쓰고 있던 시냇물이 어느날 세상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자신이 갇히기 전엔 구경도 못했던 빌딩숲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맑고 시원한 물줄기를 거침없이 쏟아 내면서다.
개발시대 도시공학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복개의 틀과 그 위를 사납게 짓누르던 고가도로들은 자취를 감췄다. 수명을 다 한 고목밑둥에서 태고의 물줄기가 다시 숨을 고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감동과 경이의 현장에서 왁자 그르르하며 일상의 활력을 되찾는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그 옛날 청계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변화는 문화적 충격과 함께 아련한 향수를 되살리기에도 충분하다.
전주시민들에게도 그런 감동의 시나리오가 마련돼 있다. 소위 아트폴리스(ART-polis)사업이란게 그것이다. 전주시가 문화공간이 잘 살아있는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겠다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계획대로라면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는 풍남동과 교동 전동일원은 전주의 전통적 도시면모를 새롭게 볼수 있는 절호의 장소다. 사업내용중에 특히 눈에 띠는것이 바로 실개천 복원이다. 서울의 청계천 복원과 견줄만한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남천교에서 동부시장에 이르는 총986m 구간에 실개천이 다시 흐르게 한다는 이 사업은 지난 4월 일부 구간 통수식까지 마쳤다. 그런데 막상 그 실개천 현장을 찾은 시민들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다. 의외를 넘어 실망의 수준이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다를수 있겠지만 적어도 필자의 생각은 그렇다.
당초 실개천을 복원한다고 했을때 시민들 생각은 그랬을 것이다. 꼭 청계천 만큼은 못돼도 적어도 옛날 오목대를 끼고 흐르던 물줄기의 흔적만이라도 보게 될 것으로.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보도를 따라 흐르는 실개천이라는 것이 폭이 1m 내외밖에 안되는 데다가 평균 수심이 고작 10㎝안팍이란다. 그나마 지하에서 퍼올려 인공적으로 흐르게 한다는 물의 흐름 속도도 느려 도대체 이것을 개천이라고 불러야 할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그렇게 봐서 그런지 이 구간에 군데군데 조성해 놓은 쌈지공원이나 정자, 휴게시설등도 도무지 주변 한옥군과 경관상 조화를 이룰수 있는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한마디로 어린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꿉놀이 동산을 꾸며놓은 수준을 못벗어 난듯 하다면 실례(?)되는 표현일까?
아트폴리스 사업에 총130여억원이 투입된다고 한다. 청계천 복원 감동을 기대했던 시민들에게 실망비용으로 지출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다. 시정(市政) 생색내기에 앞서 보다 치밀하고 꼼꼼하게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승일(본보·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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