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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모르는 문화이야기] (21)예술가들의 예명(藝名)

가족들 몰래 활동하기 위해 대부분 선택…지인 권유·사주학상 풀이로 이름 짓기도

"나는 소리를 시작하면서 부터 바로 '민소완'이란 이름으로 살아왔어요. 뜻이라기 보다는, 그냥 그 이름이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리 한 지 30년이 넘다보니 사람들은 내 본명을 전혀 몰라요. 나도 '민소완'이 더 편하고."

 

'민소완'이란 예명으로 더 잘 알려진 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 '적벽가' 보유자 성준숙. 그는 "집에서 소리하는 것을 반대해 숨기고 활동하려다 보니 예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안동 김씨 양반이 싫어서 일제시대 하씨로 성을 바꾸고 방황하는 생활을 했다" 고 밝힌 하반영 선생. ([email protected])

예술인들이 본이름 밖에 따로 가지는 이름을 가리키는 예명(藝名). 예술인들이 예명을 쓰는 이유는 다양하다.

 

연예인들은 좀더 예쁘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찾다보니 예명을 짓는 경우가 많지만, 광대가 무시당하던 시절을 버텨온 원로 예술인들은 가족들 몰래 활동을 하기 위해 예명을 택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예술인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진짜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 중에서는 민소완 명창을 비롯해 홍정택(본명 홍웅표) 이일주(본명 이옥희) 명창과 유지화(본명 유지화) 최선(본명 최정철) 명인이 대표적으로 예명을 쓰고 있다.

 

홍정택의 아내이자 '춘향가' 보유자인 김유앵 명창은 "홍정택 선생은 스승인 이기권으로부터 예명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나도 원래는 집에 딸이 많아 '끝례'라고 불렸지만, 예술을 시작하면서 정식으로 '유앵'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열아홉부터 '최선'으로 살아온 '호남살풀이춤' 보유자 최정철의 예명은 '착할 선(善)'을 쓰면 그 이름이 널리 퍼질 것이라며, 연극인 황철이 지어준 것이다. '정읍농악' 상쇠인 유지화는 본명도 '지화(知和)', 예명도 '지화(枝華)'다. 너울거리는 부포에서 '꽃가지'라는 예명이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중견국악인 중에서는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단원 천명희가 예명을 쓰고 있다. 본명은 천희심. 어려서 부터 이름이 2개였지만, '명희'란 이름을 써야 유명해진다는 사주학상 풀이에 따라 '명희'로 활동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예명을 쓰는 경우가 적은 미술계에서는 원로미술가 하반영 선생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전북예총과의 인터뷰에서 "스승의 권유로 사군자를 배우게 되었으나 아버지께 안동 김씨 양반의 가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꾸지람을 듣고 가출을 하게 되었지요.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얘기합니다만 나는 안동 김씨 양반이 싫어서 일제시대 하씨로 성을 바꾸고 방랑, 방황하는 생활을 했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때 처음 그의 성이 '김씨'라고 알려졌지만, 지금도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제자들 중에서는 '나라 국(國)'에, '바람 풍(風)'을 써 본명이 '하국풍'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선생의 측근은 "반영은 호이고, 호적에 올라가 있는 본명은 '구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중섭과 어울리며 그림을 그렸던 젊은 시절에는 '성진'이란 이름을 썼으며, '반영'이란 호는 선생이 그림으로 어느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면서 직접 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인들 사이에서는 등단한 선배와 이름이 같을 경우 예명을 짓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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